장미의 열반김아타 지음/440쪽·1만8000원·박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카메라로 포착해온 사진작가 김아타(58)의 치열한 예술철학이 녹아 있는 산문집. 만신 김금화의 정신을 찍겠다며 찾아가 겨우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 사람들은 만신의 생생한 기(氣)를 포착한 사진을 보고 경악한다. 하지만 작가 자신은 ‘정제된 정신’을 찍지 못했기에 실패한 사진이라고 말한다. 1989년 장미가 피고 시드는 과정을 열이레에 걸쳐 촬영한 뒤 바짝 말라 향이 다 날아간 장미를 불쑥 불태웠을 때 풍겨온 강렬한 장미향(장미의 열반)이 자신의 예술적 개벽이 됐다는 토로가 인상적이다.
제주도이즈미 세이치 지음·김종철 옮김/416쪽·2만5000원·여름언덕
1936년 최초로 적설기 한라산 정산에 섰지만 등정 과정에서 친구를 잃은 경성제국대 일본인 학생 이즈미 세이치(泉靖一·1915∼1970)는 문화인류학자가 돼 30년에 걸쳐 제주도의 자연, 인문, 풍속을 조사했다. 그는 1966년 그 성과를 모아 일본에서 출간했다. ‘제주학의 진정한 첫 번째 개론서’로 꼽히는 이 책을 제주 출신 언론인이자 산악인 김종철 씨(1927∼1997)가 번역하고 역주해 놓은 것을 역자의 부인이 책으로 펴냈다. 다양한 통계조사가 놀랍고 제주의 풍속을 담은 80장의 흑백사진도 인상적이다.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베르나르 올리비에 외 2인 지음·임수현 옮김/208쪽·1만3000원·효형출판
쇠이유(seuil)는 프랑스어로 ‘문턱’을 의미한다. 또 4년간의 실크로드 대장정 체험을 책으로 엮은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2000년 설립한 프랑스의 청소년 교화단체다. 이 단체는 소년원에 갇힌 비행청소년에게 성인 동행자와 함께 100일간 2000km의 외국 도보여행 기회를 제공한다. 걷기를 통해 삶의 리듬을 되찾고 충동을 조절하고 질서를 따르는 법을 익혀 ‘길 잃은 아이들’에게 사회화의 문턱을 넘게 도와준다.
레일웨이 맨에릭 로맥스 지음·송연수 옮김/352쪽·1만4900원·황소자리
기차와 철도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철도광’이 된 영국 소년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 장교로 일본군 포로가 된 그는 미얀마와 태국 간 철도 건설현장에 동원된다. 평소의 취미대로 철도지도를 만든 그는 스파이 혐의로 참혹한 고문을 받았다. 겨우 목숨을 부지해 귀국한 그는 고문후유증을 견디다 못해 당시 일본군 통역관 나가세 다카시를 50년의 추적 끝에 찾아내 눈물의 속죄를 받아낸다. 이 실화의 주인공 에릭 로맥스(1919∼2012)가 1995년 발표한 감동의 논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