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춘순례(尋春巡禮)/최남선 지음·심춘독회 엮음/400쪽·2만 원·신아출판사
1925년 봄 육당 최남선(1890∼1957)이 남도 문화유산 답사에 나섰다. 50여 일간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에서 시작해 호남 일대를 돌았다. 금산사 내장사 내소사 선운사 백양사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 등 오래된 절집에서 ‘국토여래’를 보았다. 모악산 내장산 백암산 선운산 변산 무등산 지리산의 속살거림과 하소연도 들었다.
육당의 길동무는 석전 박한영 스님(1870∼1948). 육당이 스무 살 아래였지만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석전은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 교장을 지낸 선지식.
‘나도 몇 번 지적했지만, 육당의 글은 난삽하기로 정평이 있다. 헌데 이 책만큼은 묘사가 세밀할뿐더러,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해학적인 관찰과 비유, 그리고 고, 금, 아, 속, 학, 상(古今雅俗學常)을 넘나드는 자유자재의 어휘 사용까지 놀랄 만하다.’(동아일보 1926년 6월 1일자)
그렇다. 품격 있고, 단아한 묘사에 몇 번이나 무릎을 친다. 도저한 민속학적 해석이나 지명 풀이는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다리는 가쁠지언정 눈은 그대로 살이 찐다’ ‘봄이란 철을 가지고 오는 것, 달을 가지고 오는 것, 날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실상 한나절 한 시간 동안에 와락 달려드는 것이다’ ‘산을 떡이라 하면 돌은 그 웃기요, 물은 그 꿀이니’ ‘달마같이 생긴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상투같이 얹혀’….
순전히 전주 재야 학인 7명의 ‘땀의 산물’이다. 이들은 8개월 동안 매주 모여 한문 투의 원문을 우리말로 쉽게 풀이했다. 옛 모습이 담긴 사진과 지도, 그림도 찾아내 이해를 도왔다. 가히 ‘학문공동체가 피워낸 꽃’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