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경제부 차장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서면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부자들에게 ‘글로벌 부유세’ 등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9년 월가 점령 시위로 ‘1 대 99 사회’에 대한 분노를 경험한 미국 사회는 그의 도발적 주장에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피케티의 책이 지난해 프랑스에서 처음 출판됐을 때의 반응은 이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난달 28일 ‘2014 동아국제금융포럼’ 참석차 방한한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피케티의 의견이 ‘100% 맞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우리의 삶이 더 불평등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설명해준다. 나도 좋아하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책의 인기에 낀 거품은 경계했다. “프랑스인들은 피케티의 책이 독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경험한 일이니까요. (중략) 이것도 버블, 즉 ‘피케티 버블’입니다. 출판사들이 이런 걸 만들어 내려고 하죠.”(실러 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계와 기업 최고경영자(CEO) 같은 ‘슈퍼부자’에 대한 불신이 큰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실러 교수는 “(피케티의 책이 나오면) 한국에서도 아마 잘 팔릴 것이다. (미국과) 똑같이 금융계나 기업 경영진에 대한 분노와 긴장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는 빚에 짓눌린 중산층, 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없는 청년실업자, 소득절벽에서 떨어진 빈곤노인 등 ‘앵그리 세대’의 분노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계는 뼈를 깎는 쇄신과 인간친화적 금융혁신으로 소득 불평등 해소에 나서도 모자랄 판에 직원들의 일탈과 경영진의 잦은 권력암투로 불신과 분노만 키우고 있다. 한국의 대표 금융회사인 KB금융그룹은 내부통제는 물론이고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갈등으로 경영의 핵심인 의사 결정과 소통능력마저 무너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뢰가 바닥난 사회에서 분노는 투기를 부르는 탐욕처럼 쉽게 전염된다. ‘피케티 버블’은 민심의 분노를 먹고 자랄 것이다. 그 후환은 누가 책임질 건가. 금융계가 답을 해야 할 차례다. 피케티 ‘자본론’ 한국어판은 9월경 나온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