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이후 한국 급성장… 부정한 이득 추구하는 강력한 이익집단 없었기 때문 평화 - 번영 50년 지속되며 사회 곳곳에 두껍게 형성 학력이나 출신배경 아닌 성과주의로 평가시스템 바꿔 전관예우 폐해 막자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맨서 올슨이라는 정치경제학자는 국가의 성장과 퇴보의 요인으로 이익집단의 역할을 지적했다(Mancur Olson, 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 Yale University Press, 1982).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본이 급성장했던 것은 패전과 맥아더 사령부의 개혁으로 인하여 구질서(舊秩序)가 무너지고 이익집단들이 약해지면서 가능했다는 것이며, 그 후에 퇴보하기 시작한 것은 이익집단이 강해지고 이들이 ‘지대추구(地代追求)’형 조직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대추구란 ‘개인이나 조직이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서 정당한 소득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인간은 누구나 그런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면이 있다. 기업이 끊임없이 독점적인 시장 위치를 가지려고 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사회에 지대추구 현상이 만연하면 형평성이 무너지고 개인의 근로 인센티브가 약화되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특히 50년 이상 사회가 안정되면 지대추구형 이익집단은 매우 견고해지고, 그로 인해 국가의 퇴보가 진행된다.
대한민국의 성장에 대해서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1960년대 이후에 한국이 급성장한 것은 그전 50년에 걸쳐 구질서가 무너지고 사회계층이 사라졌으며, 아직 강력한 이익집단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평화와 번영’이 50년이 넘게 계속되면서 사회 곳곳에 지대추구형 이익집단이 다수 형성되었다. 한국 사회의 지대추구 집단은 고시 출신의 관료와 법조인, 언론계, 노동조합, 의료 관련 이익집단, 일부 대학 등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지대추구 현상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소위 ‘관피아’나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전형적인 지대추구 현상이다. 최근 서울대 음대 교수들의 행태도 마찬가지이다. 유수한 대학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노력과 성과 없이 이익을 추구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행태가 바로 지대추구이다.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형성하여 정당한 주장과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지대추구가 아니지만, 노조 간부들이 그 지위를 이용해서 일을 하지 않고 사익을 보는 것은 지대추구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에서 지대추구 현상을 축소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개인 차원과 조직 차원에서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하나는 사회 전반에서 실력주의를 버리고 성과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실력주의(meritocracy)란 시험 잘보고 성적 좋은 사람이 인정받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제 이런 평가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사회는 학력이나 출신 배경이 아니라 실적과 성과를 중심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방향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경영성과가 좋은 기업의 공통점은 학벌이나 출신 배경을 중요시하지 않고, 업무성과를 평가해서 보상하는 인사시스템을 갖고 있는 점이다. 모든 조직은 구성원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가에 따라서 평가하고 보상하는 성과주의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 사회 전체가 성과주의로 전환하고 지대추구형 이익집단의 폐해를 축소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압축성장은 바로 압축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