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1963∼)
제 몸의 반을 나누어 주고
상처를 재로 다스리며
땅에 묻히지 않고 어떻게
주렁주렁 열리는 감자가 될 수 있을까?
반쪽의 감자로 나누어져서야
씨감자가 되는 달콤한 상처
티눈 몇 개를 두고
온몸으로 아픔을 다스리며
슬픔의 눈을 옆으로 옮겨 붙으며
서로에게 깊은 눈짓으로 이어지는 사랑
나는 왜 씨감자가 되지 못했을까
나누어야 밑드는 행복을
왜 알고도 노래하지 않았을까?
감자를 캐면서 이미 감자가 아닌
씨감자의 가벼워진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감자는 감자를 되심어야 또다시 감자를 생산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영양번식작물의 대표적 작물이다.’ 그래서 그해 소출 감자 중 10분의 1을 씨감자로 남긴다고 한다. 어차피 식용이 되는 감자 입장에서는 씨감자가 되는 게 억울한 일은 아닐 테다. 땅에서 벗어나 하나의 완성체로 비로소 느긋이 말라가며 쉬고 있는데, 칼로 쪼개져 도로 땅에 묻히고 상처 입은 몸으로 열을 뿜으며 다시 생을 시작하는 건 틀림없이 고통스러울 테지만, 희열이기도 할 테다. 씨감자로 말미암은 ‘주렁주렁 열리는 감자’는 씨감자의 보람이기도 하고 농부의 보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땅에 심겨진 씨감자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주렁주렁 달린 감자를 캐낸 뒤 무심히 뽑아버리는 감자 줄기 끝의, 까마득히 잊힌 ‘이미 감자가 아닌/씨감자의 가벼워진 죽음’을 화자는 기린다. 감자 작농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씨감자의 말로를 무화에서 건져내는 시인의 눈이며 마음이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