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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건혁]급할수록 안전이 먼저다

입력 | 2014-06-02 03:00:00

[세월호 참사]




이건혁 기자

“현장 상황을 다들 잘 아시겠지만….”

사흘 전 세월호 외벽 절단 작업에 참여했다 숨진 민간 잠수사 이민섭 씨(44)의 투입 경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고명석 대변인이 자주 쓴 말이다. 세월호 실종자 수습이 11일째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부족한 민간 잠수사를 급하게 메우다 보니 신분까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숨진 이 씨가 하던 수중에서의 선체 외벽 절단은 산업잠수사 자격증을 갖거나 숙련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할 수 있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이 씨는 잠수사 생활을 하긴 했지만 산업잠수사 자격증은 없었다. 게다가 형의 이름을 사칭하며 형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했다. 이 씨가 자신처럼 산업잠수사 자격증이 없는 형을 굳이 사칭한 이유에도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하지만 해경이 주민등록증이나 자격증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이 씨는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절단 작업을 진행한 업체 ‘88수중공사’가 건네준 자료를 믿고 인력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해경 차원에서 투입 인력의 이름, 자격증 소지, 경력 등을 확인하거나 검증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업체만 통과하면 얼마든지 가공의 인물이 돼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책본부 측은 “자격증 확인에 1주일, 신체검사 결과에 10일 정도 들여 확실한 사람만 쓰면 되겠지만, 현장 사정이 그런 여유를 가지고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변명했다. 제때 인력수급을 할 수 없는 ‘현장의 사정’ 때문에 인력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다 해도 지켜야 할 절차는 지켜야 한다. 인력 관리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의 신원과 능력을 검증하는 건 안전을 위해 당연히 거쳤어야 할 절차 아닌가. 특히 지난달 6일 잠수 도중 숨진 민간 잠수사 이광욱 씨도 산업잠수 관련 자격증이 없어 논란이 되자 해경은 잠수사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했으나 빈말에 그치고 말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해경과 대책본부는 업체가 넘겨주는 인력들의 신분과 자격증 소지 여부, 경력 유무를 확인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사고는 총체적 안전부실로 발생한 사고다.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안전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세월호 사고의 교훈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진도=이건혁·사회부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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