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일단 심장이 멎으면 100명 중 3, 4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질병관리본부 통계). 심장 정지 후 치료가 1분 늦어질 때마다 살아날 확률은 10%씩 감소한다(대한심폐소생협회 자료). 119와 통화가 된다 해도 평균 8분 후에 구급차가 도착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심장은 ‘4분’ 이상 피가 흐르지 않으면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뇌 역시 뇌손상으로 후유증을 피할 수가 없다.
○ 고마운 장기(臟器) 심장
이렇듯 고마운 심장이지만 잘못되면 대가는 혹독하다. 바로 사망이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죽어갈 때 놓치지 않고 다시 살리는 기술이다. 심장은 한 번 뛸 때마다 ‘소주 한 잔 반’ 정도를 짜내어 전신에 산소와 양분을 공급한다. 심폐소생술은 딱딱한 흉벽을 눌러 심장을 찌그러뜨려 ‘소주 한 잔 반’밖에 안 되는 소량의 피가 심장을 박차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심장은 1분에 몇 번이나 뛸까? 60∼100회면 정상이다. 따라서 심폐소생술을 할 때 소주 한 잔 반의 피를 1분에 100번 가슴을 눌러서 짜내면 충분하다. 다만 흉강 속에 손을 넣어 심장을 직접 주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위치를 제대로 된 힘과 패턴으로 눌러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누르는 가슴의 위치는 명치뼈 아래 중앙이고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세계 누르는 것이 기본요령이지만 누르는 힘과 패턴은 전문가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야 통달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가슴을 누르기만 하고 ‘기도 확보’와 ‘인공호흡’은 추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바뀌어 기도 확보용 대롱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입속의 이물질과 접촉하거나 동성의 입술에다 키스를 해야 하는 역겨움과 감염의 위험도 사라졌다. 기술은 더욱 간단해졌고 성공 확률은 더 높아졌다.
일단 주변의 누군가가 답답함을 호소하거나 무호흡, 의식 소실 기미를 보이면 ①큰 소리로 괜찮은지 물어보고 흔들어 깨워보고 숨을 쉬는지 보고 반응이 없다고 생각되면 반듯하게 누인 뒤 ‘즉시’ 심장마사지를 시작한다 ②주변에 사람을 불러 모으고 119에 ‘심장마비’라고 신고해 올 때 제세동기(전기 충격기)를 가지고 오도록 한다 ③가슴 압박을 1분에 100번씩 계속하고 200번마다 숨쉬는지 확인한다.
병원 응급실까지만 갈 수 있도록 도우면 그때부터는 전문소생술과 순환보조장치(ECMO·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투약, 저체온보존법 등 전문통합치료의 기회를 갖게 된다. 목욕탕에서 갑자기 일어나다가 천장이 빙빙 돌거나 의식을 잠깐 잃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피가 다리로 몰려 잠시 뇌에 피가 가지 않아서 기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장 기능이 정지되는 경우에도 뇌로 피가 가지 않아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뇌에 피가 안 가는 것이 4분 이상 지속되면 그때부터는 뇌 손상이 시작된다.
필자는 신생아의 심장을 멈추고 체온을 섭씨 18도까지 낮추어 조직(뇌·심장 등)을 보호하면서 수술하는 경우가 있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아기는 45∼60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피가 안 가는 상태를 버틸 수 있다. 에너지 대사율을 거의 ‘제로’로 떨어뜨리면 피가 가지 않아도 조직이 부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 체온에서 심장이 정지되어 4분 이상 뇌로 피가 가지 않는다면 뇌 조직은 상하기 시작한다. 돼지의 체온을 18도까지 낮추고 심장을 100분 동안 정지시킨 후 소생시켜 열이 나는 상태(39도)를 만들어 24시간 후 뇌 조직을 보았더니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34도로 유지했더니 손상이 훨씬 적었다. 한마디로 심장과 뇌에 4분 이상 피가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은 누가 저질렀건 직무유기이고 죄악이다.
거듭 말하지만 심장이건 뇌건 피가 안 가도 되는 시간은 고작 4, 5분이다. 당황하고, 겁먹고, 사람 부르고, 119 신고하고, 옷 갈아입고, 택시 부르고, 환자 운반하다가는 이미 때를 놓친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