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문화好통/손택균]시민들 눈높이 무시한 콧대높은 공공건축물

입력 | 2014-06-05 03:00:00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층 전시실 입구 안내표지판.


손택균 기자

서울시 신청사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 공공건축의 현실에 대해 논의한 서울건축포럼 토론회가 지난주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서울시 신청사를 설계한 유걸 아이아크 공동대표는 패널로 참석해 “건축물에 대한 가치평가를 건축가들이 주도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축계 주변의 왈가왈부에 아랑곳없이 시민들은 두 건물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옳은 말인데, 이상하게 고개가 갸웃해졌다.

토론회 다음 날 오랜만에 DDP를 다시 찾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처음 방문하는 사람처럼 인포메이션센터로 들어갔다. 인쇄된 안내도가 있는지 물었다. 직원은 당황하며 어딘가로 가보라고 했다. 포기하고 엘리베이터로 4층에 올라가 널찍한 경사로를 느릿느릿 걸어 내려왔다.

고개가 갸웃해졌던 까닭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2∼4층 각 전시실은 모두 4000∼8000원을 받는 유료 전시다. 2층 전시의 입장권을 구입하려면 4층 매표소로 다시 가야 한다. 전시실 입구에는 ‘한 번 나가면 재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표를 받는 직원에게 “전시실 안에 화장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귀찮은 듯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건물이든 화장실은 층마다 같은 위치에 있다. 화장실 위치를 층마다 달리해 배수관을 비비 꼬는 설계자는 없다. DDP는 회전경사로 바깥쪽에 화장실을 붙였다. 하지만 설계자가 구상한 방문객의 동선(動線) 프로그램은 실제 공간 운영에 반영되지 못했다. 전시실을 찾은 관람객은 “잠깐 나가서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느냐”며 직원을 붙들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토론회에서 이필훈 포스코A&C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대규모 상업건물이야말로 공공건축의 좋은 모델”이라고 말했다.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지금의 DDP 같은 동선이 용납될 리 없다. DDP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은 디자이너들이 개별 부스를 연 지하 카페와 디자인용품 판매장이었다. 시민들은 유 대표의 말대로 공공건축물을 ‘잘’ 이용하고 싶어 한다. DDP는 그런 시민들을 ‘잘’ 돕고 있는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