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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치영]민간인 규제사령탑 구하기

입력 | 2014-06-05 03:00:00


신치영 경제부 차장

국무조정실이 지난달 29일 정부의 규제개혁 실무를 총괄할 규제조정실장 자리를 채우기 위한 3차 공모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달성을 위해 강력한 규제개혁 의지를 밝히자 국무조정실은 규제조정실장을 민간인으로 채우겠다며 대통령의 뜻에 부응했다. 을의 위치에서 규제의 쓴맛을 본 민간 기업인에게 규제개혁을 맡겨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개혁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었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당시 “총리의 말씀을 전하자면 천하의 인재를 구해보겠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두 번 공모에 나섰다. 1월 1차 공모에 11명, 3월 2차 공모에 10명의 지원자가 몰렸으나 기대했던 기업인 지원자는 없었다. 결국 2차 공모 후 관료 출신으로 민간에서 일하고 있는 지원자를 1순위로 청와대에 추천했다. 하지만 기업인 출신을 앉히겠다고 큰소리치다 퇴직 관료를 메뉴에 턱 올렸으니 청와대가 받아들일 리는 만무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결정 직전 “청와대에 추천했으니 잘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관료사회의 폐쇄성을 아는 사람들은 정부가 각 부처의 규제개혁 실무를 총괄하는 사령탑을 시켜주겠다는데도 기업인들이 나서지 않는 상황을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다. 민간인 출신 규제조정실장에게 마음껏 일해보라고 해봐야 충분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구두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는 공무원 틈바구니에 끼어 들러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부처 공무원들은 규제 폐지에 반대하는 온갖 명분을 만들어 엊그제까지 민간인이었던 그를 흔들 게 뻔하다. 언젠가 다시 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그가 밥그릇과 같은 규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공무원들과 정면승부를 벌일 수 있을까. 임기 3년간 월급이 절반 이하로 줄고 임기가 끝나면 재취업 제한에 걸려 민간기업으로 옮길 수도 없는 불이익마저 감수할 수 있을까.

민간인 규제조정실장 사용법은 간단하다. 조직을 주고 권한을 주면 된다. 국·과장급 공무원 몇 명을 직접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실무자를 민간인으로 뽑을 힘도 있어야 한다. 그의 말에 각 부처 실무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반응하도록 권력자의 힘도 실어줘야 한다.

규제 사령탑에 꼭 기업인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공익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좋은 규제’와 공무원의 철밥통 등 사익을 지키는 데 쓰이는 ‘나쁜 규제’를 가려내는 선구안과 공무원들의 저항에 맞서 싸우고 설득하는 용기, 나쁜 규제를 뿌리 뽑겠다는 집요함이 있는 인재라면 국무조정실장이든 청와대든 버선발로라도 뛰어 나가 삼고초려를 해서 ‘모셔 와야’ 한다. 들러리로 만들지 않겠다는 확언을 해주라는 뜻이다. 그래야 기업인이 제 발로 호랑이 굴로 걸어 들어오겠다는 용기를 낸다.

김동연 실장은 지난달 한 포럼에 참석해 “규제혁파를 위해서는 갑(관료)과 을(국민·기업)이 자리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저잣거리 만담꾼 하선이 광해군의 대역이 돼 백성을 위한 국정을 펼치는 장면을 보여줬다. 왕 노릇을 하라는 말에 놀라 도망치려는 하선을 도승지 허균이 붙들고 길잡이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광해 대역 하선은 없었을 것이다.

규제조정실장 3차 공모는 11일 끝난다.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직접 찾아 나서라. 민간인 규제 사령탑을 맡긴다는 정부의 의욕적인 계획이 이번에는 결실을 봐야 한다. 규제개혁은 결코 좌초돼서는 안 될 핵심 국정과제이므로.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