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소설가
나는 차창을 한 번 내렸다가 다시 끝까지 올렸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더이상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통만 더 커질 뿐. 나는 조수석 위에 놓인 검정 비닐봉지에서 투명테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것으로 차 문 유리창 끝부분을 촘촘하게 막았다. 한 번으로 안심되지 않아 두 번, 세 번, 겹쳐 붙였다. 그것만으로도 차 안 공기는 이전보다 더 농밀해진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화덕에 번개탄을 넣고 불을 붙이면 그뿐. 나는 뒷좌석 바닥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놓여 있는 작은 항아리만 한 화덕을 내려다보았다. 만오천 원을 주고 산 화덕. 나를 끝장낼 화덕.
죽을 생각까지는 해 본 적 없었다. 상황이 자꾸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럴수록 까닭 없는 오기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다. 하긴, 그랬으니까 사채까지 손댄 것이겠지…. 아버지는 왜 그런 부채투성이 주물 공장을 나에게 떠넘기다시피 물려주고 떠난 것일까? 원망하는 마음마저도 이젠 오래전 달아놓은 플래카드처럼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나는 번개탄과 함께 산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눈물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헤드라이트가 꺼지고 얼마 후, 누군가 똑똑 차 문 유리창을 두드렸다. 주머니가 지나치게 많이 달린 붉은색 등산 조끼를 입은 남자였다. 나는 차창을 내리려다가 투명테이프 생각이 나, 그대로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 혹시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 이게 트럭이라고 원, 라이터 잭도 나가고 엉망이어서….”
남자는 두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가는 사람이었다.
“쓰고 그냥 가지세요.”
다시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한 달 전 서류까지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난 아내를 생각하고 있을 때쯤… 또 한 번 똑똑,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아,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걸까? 나는 최대한 화를 참으며 다시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 이건 제가 선생님께 고마워서 그러는 건데요, 이게 진짜 유명한 간잽이가 손을 본 고등어거든요. 제가 이걸 마트에 사만팔천 원에 납품하는 건데, 선생님한텐 그냥 삼만 원만 받고 넘길게요. 이게 염장이 아주 제대로 된 거라서.”
아이 씨, 정말…. 생각 같아선 그냥 삼만 원을 주고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지갑엔 만육천 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죽은 후, 화덕 옆에 간고등어가 놓여 있는 게 발견된다면… 사람들은 과연 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이번엔 아무 말하지 않고, 그를 잠깐 노려보기만 한 후, 운전석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몇 분 지나지 않아, 똑똑, 그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나는 바락바락 그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씨익,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저기 그러지 마시고요, 선생님. 여기 벤치에 앉아서 저하고 같이 고등어나 한 마리 구워 드시죠. 어차피 라이터도 저 주셔서 번개탄 붙이기도 어려우실 텐데… 뭐, 그냥 허기나 채우자고요. 별도 좋은데.”
나는 그의 손에 쥐인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뚝뚝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