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국제부 기자
바운티 헌터는 지금도 미국에서 매년 약 3만 명의 범죄자를 잡는다. 전체 도망자의 무려 90%에 이르러 비용 및 시간 절감효과가 크다. 민간인에게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한을 줘도 되느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21세기 한국에 때 아닌 바운티 헌터 열풍이 불고 있다. 검경이 도피한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5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기 때문. 그가 한때 은신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전남 순천 송치재휴게소 인근 별장 일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유병언 헌터’들이 북적여 조용히 지내던 산골 주민들이 불편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약간 씁쓸하다는 생각도 든다. 구원파 신도와 비호 세력의 조직적 협조가 있었다지만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50일이 지났는데 수사기관이 유 씨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70대 노인인 유 씨는 신창원처럼 혈기왕성한 30대가 아니며 한국이 미국처럼 땅덩이가 넓지도 않다. 또 5억 원은 결국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역대 세계 최고액 현상범은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 미 정부는 무려 5000만 달러(약 500억 원)의 돈을 걸었지만 그는 이를 비웃듯 신출귀몰한 도피 행각을 이어갔다. 미 정부는 사건 발생 10년 만인 2011년 5월에야 그를 사살했다. 이 작전에 가담했던 특수부대원 매트 비소넷의 회고록 ‘만만한 날은 없다(No Easy Day)’와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 따르면 빈라덴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30대 초반 여성 요원이다. 미쳤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수년간 빈라덴의 행적만 파고들어 희대의 테러리스트를 잡는 데 성공한다.
즉 아무리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있다 해도 민간인이 전문 훈련을 받은 수사기관 관계자보다 뛰어나긴 힘들다. 검경도 애가 타겠지만 조직의 명예를 걸고 유 씨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하루속히 그를 체포해 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할 시점이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