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남 논설위원
아베만큼 한국인의 미움을 받는 일본 지도자는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4월 아사히신문이 발표한 한중일 국민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한국 응답자의 67%가 “일본이 싫다”고 대답했다. 호감을 표시한 응답자는 4%에 불과했다. 아베가 취임 이후 쉬지 않고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망발을 쏟아낸 탓이다. 한국인 위안부 책임은 극구 부인하면서 일본인 납치자 조사와 대북(對北) 제재를 맞바꾸려는 아베의 이중행보도 한국인의 반감을 키울 수 있는 재료다.
그러나 미움은 미움으로 그쳐야 한다. 일본 지도자에 대한 불쾌한 감정에 파묻혀 북-일 합의 같은 돌발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낭패를 보기 쉽다. 현재 동아시아에는 세계 질서의 개편을 예고하는 듯한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일본은 미국 중국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변화의 강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플레이어다. 북-일 협상이 잘되면 아베가 평양을 방문해 은둔의 지도자 김정은을 만날 수도 있다. 북한이 일본과 관계 개선에 나서 두둑한 경제 지원을 받게 되면 잠재적 돈줄인 남한에 대한 기대를 한순간에 버릴지도 모른다.
아베는 1988년 납치 피해자 가족을 만난 것을 계기로 일본인 납북 사건 해결에 매달렸다. 그는 2002년 9월 김정일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정상회담에 배석했을 때도 파란 리본을 달았다. 아베의 파란 리본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자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우리 정부의 고위인사 가운데 아베처럼 끈질기게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었던가. 북핵 문제만 하더라도 2003년 초대 이수혁 수석대표 이후 현 황준국 수석대표에 이르기까지 8명이 자리를 주고받았지만 사태 악화를 막지 못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들 중에 “북핵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은 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과 드레스덴 선언, 북핵 불용(不容)에는 강력한 실천의지와 각오가 담겨있는지 궁금하다.
아베가 밉기는 하지만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은 일본인 납북 문제보다 훨씬 시급하다. 북한에 납치됐거나 억류된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많다. 남북이 해결해야 할 인도적 현안도 북-일 사이의 문제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저 ‘아베 때리기’에 머물다 보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