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굉(1952∼ )
내 고향 청기마을 앞에는 참 이쁜 동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참말로 이쁘게 흘러가는 시냇물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여러 해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젊은 어머니는 동천에 가서 빨래를 했습니다.
얼음이 엷게 언 시냇가에 자리를 잡고 툭툭 얼음을 깨면,
그아래로맑고차가운냇물이흘러가는것이었습니다.
시린 손을 달래며 서둘러 빨래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무슨 일인지 일어서지지 않았습니다.
빨래를 하는 사이 물에 잠긴 치마가 얼어붙은 것이었습니다.
방망이로 얼음을 툭툭 깨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맛자락에 붙은 얼음조각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겨울 하늘처럼 맑고 고와서,
조금 빨리 걸으면서 그 소리를 들어도 보고,
조금 천천히 걸으면서 그 소리를 들어도 보았습니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그 소리를 또 듣고 싶어서,
일부러 빨랫감을 만들어 여러 번 냇가로 나가
일부러 치마를 물에 담그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조금 담그어 작은 얼음 조각을 만들고,
어떤 때는 많이 담그어 굵은 얼음 조각을 만들어,
얼음 부딪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온 날짜가 참 많았습니다.
그해 봄 동천 건너편 청일봉 기슭 참꽃들이
유난히 일찍 피어 붉고 뜨겁게 타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맛자락만 냇물에 잠겨 얼어붙었을까. 버선도 젖어 그 거죽이 꿉꿉하게 얼었을 테다. 고무장갑도 없었을 테니 손도 빨갛게 얼어 터지고 곱았을 테다. 그 옛날의 한겨울, 식구들의 빨랫감을 도맡은 시골 아낙의 고생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화자 어머니는 징글징글 힘들었다고 신세타령을 하지 않는다. 그녀 가슴속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맛자락에 붙은 얼음조각이/부딪치며 내는’ 소리, ‘겨울 하늘처럼 맑고 고운’ 그 소리만 여태 남아 있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