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현충일] 朴대통령, 국가의 책무 강조
6·25 전사 아버지 찾아…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한 중년 남자(가운데)가 딸(왼쪽) 아들(오른쪽)과 함께 6·25전쟁 때 전사한 아버지의 묘소에 정성 들여 절을 올리고 있다. 묘비에는 정전협정 체결 한 달 전인 ‘1953년 6월 27일 금화지구에서 전사’했다고 적혀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50년 11월 17세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이영식 씨(81).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참전유공자로 인정하는 증서를 받자 북받치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보훈처가 직접 발굴해 유공자로 인정한 1069명 중 이날 증서를 받은 5명의 유공자 표정엔 감동과 감격이 넘쳤다.
○ 정부가 국가유공자를 직접 찾아 나선 이유
보훈처는 올 1월 유공자 발굴을 위한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국방부 및 병무청과 함께 병적(兵籍)자료를 수집해 조사하고 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3월 군에 입대해 임진강 노리고지 전투에서 활약한 이장손 씨(81)는 본인이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 전투는 국군 1사단과 중공군 40사단이 이틀간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3400여 명이 전사했다. 그들의 피가 임진강을 붉게 물들였다고 해 ‘피의 능선’이라고 할 정도였다. 보훈처는 이번 발굴 과정에서 6·25전쟁에 참전해 전공을 세우고도 서훈을 받지 못한 유공자 23명(국군 18명, 유엔군 5명)을 새로 찾았다고 밝혔다. 현재 이들에 대한 공적심사가 진행 중이며 다음 달 27일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 훈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지난 5개월간 보훈처가 발굴한 참전유공자는 대상자 42만2000명 중 2152명에 그쳤다. 6·25전쟁에 참전한 국군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아 병적자료에서 참전기록을 찾아도 신상과 소재를 알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이병구 보훈처 보상정책국장은 “병적자료에 있는 본적과 가족관계 등을 통해 참전유공자의 생존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며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경우 국립호국원 등 국립묘지에 이장하거나 위패를 모실 계획”이라고 밝혔다.
○ 호국용사들의 유해 발굴에도 총력
6·25 전사 아버지 찾아…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한 중년 남자(가운데)가 딸(왼쪽) 아들(오른쪽)과 함께 6·25전쟁 때 전사한 아버지의 묘소에 정성 들여 절을 올리고 있다. 묘비에는 정전협정 체결 한 달 전인 ‘1953년 6월 27일 금화지구에서 전사’했다고 적혀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현재 유가족 2만7500여 명이 시료 채취에 참여했다”며 “아직 찾지 못한 13만여 명의 전사자를 생각하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유해발굴단이 2000년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7700여 전사자의 유해를 수습했지만 이 중 유가족을 찾아 신원이 확인된 전사는 91위에 머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현충일 추념사에서 “앞으로도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후세들이 조국을 위한 희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