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숙 경제부 차장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주변에 밝혔을 때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래도 집만 한 투자수단은 없다”며 부모님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반면 “집은 거주수단일 뿐이다. 집 사려고 빚을 깔고 앉는 건 비합리적”이란 내 주장을 귀 따갑게 들었던 후배는 “선배는 그저 ‘팔랑귀’였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부인할 수 없었다. 증권업계를 출입하며 ‘이젠 펀드투자의 시대’라는 ‘설(說)’을 오랫동안 풀었지만 최근 부동산 데스크까지 맡고 나서 ‘부동산 투자도 할 만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게 사실이니까.
다른 지인은 말렸다. “지금이 아니라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난 후가 집 살 타이밍”이라는 지적이었다. 미국 금리인상과 내 집 마련 사이. 수억 광년 떨어진 것 같은 두 사건의 거리는 의외로 가까웠다.
그래도 집을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 지인은 “서울 인구가 줄고 있다”며 통계까지 들이댔다. ‘서울 공화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늘기만 하던 서울의 실거주인구가 지난해 25년 만에 처음으로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고 금리는 오를 예정이니 아직 집을 사지 말라는 권유, 무시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4월에 집을 계약했다. 그동안 전세살이가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기간 동안 살 집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요즘 이런 전제가 무너졌다. 전세를 얻은 지 2년 만에 “보증금을 1억 원으로 낮출 테니 월세 250만 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집주인과 협상해 전세금을 3000만 원 올려주는 대신 계약기간을 1년만 연장하기로 했을 때 전세살이가 지긋지긋해졌다.
그로부터 두 달. 즐거움보다는 불안함이 더 크다. 마침 살아나던 부동산 시장이 꺾이기 시작해서만은 아니다. 부동산 시장만큼 정부 정책에 좌우되는 ‘규제시장’도 없는데, 규제의 칼을 휘두르는 정부가 정교한 메스를 대야 할 곳에 무자비한 부엌칼을 대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취득세, 양도소득세 혜택까지 주며 살리려 애쓰던 부동산 시장에 전월세 임대소득 과세는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되리라는 걸 정부는 진짜 알지 못했을까.
적어도 정책 실행자는 한 수가 아닌 두세 수 앞을 내다봐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수십 년 만에 잡은 내 집 마련의 타이밍이 ‘상투’가 아닐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