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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조희연의 이데올로기

입력 | 2014-06-10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학자의 글에는 날카로움이 있어야 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성공회대 사회학 교수)의 글은 장황하고 절충적이어서 그런 맛이 없다. 그래도 그는 대체로 성실한 학자라는 평가는 받는 모양이다. 다만 이런 애티튜드(attitude)에 대한 평가 속에 ‘진보’라고만 막연히 알려진 그의 이데올로기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조 교수는 저서 ‘동원된 근대화’(2010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스탈린 독재와 히틀러 독재는 독재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동의를 창출하는 데 일정하게 성공했지만 박정희 체제는 ‘대단히 불안정한 독재’였다. …스탈린 독재나 히틀러 독재와는 달리 박정희 독재는 그렇게 광범한 동의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

박정희 독재가 독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20세기 인류사의 수치인 스탈린 독재나 히틀러 독재보다 더 독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스탈린 독재나 히틀러 독재보다 더 독재적인 시대를 산 사람들이 그 독재자의 딸을 지지해 대통령으로 만드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현실이 싫어도 현실이다.

조 교수는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책 ‘87년 체제론’(2009년)에 기고한 글에서 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기반을 이렇게 정리한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자유주의를 내적인 성격으로 가진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자유주의 세력들의 적극적 분화가 나타나게 된다면 사회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급진적 세력의 연합을 통한 국민적 전선을 재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 교수는 자유주의가 기본적으로 시장자유주의여서 싫고, 자유주의 중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단지 포섭 대상일 뿐이라고 한다. 그의 포지션은 일단 사회민주주의인 것처럼 보이는데 정확히는 급진적 세력과 연대하는 사민주의다. 이런 의미의 사민주의는 독일 사민당(SPD)에서도 오늘날 위험시되고 있다. 조 교수가 취한 정치적 노선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정확히 현실화됐는데 그것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다.

조 교수는 함세웅 신부가 엮은 ‘곽노현 버리기’(2012년)라는 냉소적 제목의 책에 글 한 편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사전에 박명기 교수와 후보 단일화 대가로 금전을 지급하기로 약속하지는 않았다는 곽 씨의 주장을 ‘진심 어린 항변’이라고 표현하는 반면에 곽 씨를 단죄한 여론을 ‘상식화된 편견’이라고 비판한다. 곽 씨를 단죄한 여론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다 나온 것이다. 함 신부를 매개로 해서 곽 씨와 조 교수 사이에 상식을 넘어서는 긴밀한 유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임 진보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으로 포문을 열었듯이 이번 진보 교육감들은 자사고 폐지로 포문을 열었다. 선진국에서 어떻게 급식을 하는지 듣도 보도 못한 얼치기 교육감들이 전면 무상급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인 양 선전하고, 외국 생활 중 유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돈 한 푼 내지 않고 아이들을 키운 ‘빌어먹은’ 학자들이 그게 모두에게 적용되는 양 선전하는 통에 국민은 현혹됐다.

우리나라식의 자율형사립고 같은 학교는 선진국에 훨씬 더 많다. 나의 특파원 시절 경험으로 보면 선진국 중에서 평준화에 앞선다는 프랑스도 20% 이상의 초중고교 학생들이 사립학교에 다닌다. 좋은 공립학교에 가려면 좋은 학군에 살아야 하는데 그 비용에 비하면 사립고에 보내는 게 더 낫다. 나는 민족사관학교를 직접 취재한 적이 있고 용인외국어고의 소식도 지인으로부터 자주 전해 듣는다. 내 자식이 그 정도 수준은 못 돼서 유감이지만 정말 똑똑한 아이들이 있다. 제발 그런 아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바로잡습니다]

◇10일자 A35면 ‘송평인 칼럼’ 중 ‘백기완 씨의 말처럼 박정희 시대는 3만 명이 괴로웠고 3000만 명이 행복했던 시대’라는 말을 백 씨는 한 적이 없다고 통일문제연구소 측이 알려왔습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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