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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500명 조국 손길만 기다려”

입력 | 2014-06-10 03:00:00

탈북 국군포로 17명 국회 첫 방문
“南에서도 北에서도 잊혀진 존재… 남북정상회담때도 의제서 빠져, 한명이라도 더 조국에 데려와야”




국군포로들이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를 방문했다.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탈북한 국군포로 17명은 9일 국회의사당을 돌아봤다. 이들을 초청한 국군포로 및 탈북자 지원단체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오른쪽 앞)이 본회의장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대한민국에서도, 북한에서도 그동안 국군포로는 실재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은 국군포로가족회 유영복 회장(84)은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발생한 국군포로의 한반도 내 지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오전 국군포로 17명은 지팡이를 짚고 일부는 휠체어를 탄 채 국회를 방문했다. 국군포로가 대한민국 국회를 방문한 것은 처음으로 국군포로 및 탈북자를 지원하는 단체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전 의원)에서 초대했다.

유 씨는 2000년 탈북에 성공했다. 탈북 전 국군포로로서 북에서의 삶은 ‘간절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다.

21세 꽃다운 나이에 육군 제5사단 27연대 소총수로 입대한 유 씨는 1953년 6월 10일 강원 금화지구 전투에서 벙커가 매몰되는 바람에 반신이 흙에 잠겨 중공군에게 붙잡혔다. 이후 북으로 끌려간 그는 함경남도 단천시 검덕광산 등에서 아연 등을 캐며 40년 가까이 중노동을 했다.

유 씨 및 북에 있던 국군포로들은 휴전 초기에는 “많은 국군포로가 북에 잡혀 있으니 조만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군사령관이 우리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고된 하루를 버텨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들을 찾는 조국의 손길은 없었고 고된 강제노역으로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났다.

국군포로들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시 송환 가능성에 대해 고무적인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결과에서 국군포로 문제만 쏙 빠진 것. 수십 년을 기다렸지만 끝내 그들을 찾지 않은 조국에 실망한 국군포로들은 스스로 탈북을 시도하다 중국에서 잡혀 처형당했고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스스로 탈북해 남한으로 건너온 국군포로는 총 81명이다. 이 중 33명이 고령으로 사망했고 현재 48명이 생존해 있다.

휴전이 이뤄지기 바로 직전인 1953년 7월 14일 포로가 돼 2006년 탈북한 이선우 씨(85)는 “현재 북에 살아있는 국군포로는 500명 가까이 되지만 이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거동도 불편한 상태”라며 “이들이 모두 사망하기 전에 정부에서 최선을 다해 한 명이라도 더 조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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