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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의 백미는 2막 군무… 춤을 알수록 더 겁나는 작품”

입력 | 2014-06-10 03:00:00

13일 무대 올리는 문훈숙 UBC단장-발레리나 김주원




국내 발레리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지젤 라인’(목덜미에서 어깨를 지나 팔로 떨어지는 선)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김주원(오른쪽)과 1989년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무대에서 지젤 역을 맡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러시아에 보일러를 수출하는 것은 러시아에 발레를 수출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2011년 연극배우 박정자 씨(72)가 내레이션했던 모 보일러 회사의 광고 카피다. 한국 발레가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빛을 보기 힘들다는 의미일 터.

25년 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1989년 당시 26세였던 발레리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장(51)은 세계 최상급 발레단인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의 초청을 받아 마린스키 극장에 섰다. 문 단장은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무대에서 낭만 발레의 정수로 손꼽히는 ‘지젤’의 여주인공 지젤 역을 맡아 7번의 커튼콜을 받았다.

국립발레단 출신으로 유니버설발레단 상임 객원무용수로 합류한 김주원의 ‘지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UBC의 ‘지젤’이 13∼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6년 만에 공연된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15년간 국립발레단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발레리나 김주원(36·성신여대 교수)이 처음으로 UBC 무대에서 ‘지젤’을 맡아 관심을 끈다. 문 단장과 김주원을 5일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 UBC에서 만났다.

문 단장은 “지금도 많은 분들이 제 이름 앞에 ‘영원한 지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신다. 지젤은 제게 특별한 작품”이라며 활짝 웃었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김주원이 “문 단장님의 지젤 2막은 세계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문 단장은 쑥스러운 듯 “말도 안 돼”라며 손을 내저었다.

오히려 문 단장이 후배를 치켜세웠다. “무용평론가 고 김영태 선생께서 국립발레단 시절 주원이의 지젤을 보고 ‘발레리나 김주원에게 가장 잘 맞는 역은 지젤’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어요. 저 또한 주원 씨와 지젤을 함께하고 싶었죠.”

김주원은 “지젤은 춤을 알아갈수록 겁이 나는 작품”이라고 했다. “1999년 처음 지젤 역을 맡은 뒤 2012년까지 여러 번 지젤을 했지만 늘 어려워요. 호흡이 긴 데다 지젤에겐 스토리를 끌고 가는 힘이 필요하거든요. 발레리나 사이에선 진정한 프리마 발레리나를 가리는 작품으로 꼽히죠.”

문 단장은 지젤은 3번의 변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막 전반부에선 남자주인공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는 순박하고 발랄한 시골 소녀 지젤, 후반부에선 애인의 배신 앞에서 오열하며 광란으로 치닫는 지젤, 2막에선 죽은 영혼이 돼 애인을 향한 숭고한 사랑을 지키는 가련한 윌리(처녀귀신)인 지젤을 표현해야 하니까 드라마틱하고 어려운 작품이죠.”

전·현직 지젤이 꼽은 명장면은 무엇일까.

문 단장은 ‘2막의 군무’를 꼽았다. “순백의 로맨틱 튀튀를 입은 윌리들이 아름다운 음악에 맞추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추는 군무는 절도 있으면서 힘이 있어요. 지젤의 백미죠.” 윌리들이 숲 속을 지나가는 남자를 잡아다 해가 뜰 때까지 춤을 추게 만드는 이 군무는 실제로 ‘라 바야데르’ 3막(망령들의 왕국), ‘백조의 호수’ 2막과 4막의 호숫가 군무와 함께 발레 블랑(ballet blanc·하얀 발레)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김주원은 춤을 추는 발레리나의 입장을 전제로 1막 초반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추천했다.

“파트너 얼굴을 처음 볼 때 두근거려야 해요. 끝까지 감정을 이어가며 춤을 춰야 하는 발레리나 입장에선 사랑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그 장면을 추천하고 싶어요.”

총 7회 공연에 여섯 커플이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 중 두 쌍은 실제 커플인 황혜민과 엄재용, 강미선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부부다. 김주원의 상대역은 이승현이 맡는다. 5000원∼10만 원. 070-7124-1737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