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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엷은 미소라도 돌려다오

입력 | 2014-06-10 21:56:00

생계와 교육이 막막한 서민에게 손에 안잡히는 ‘국가 개조’는 잠꼬대
내수 위축시키는 집단심리 탓인지 국내 소비는 줄고 해외 소비는 늘어
정부 人事물어뜯기보다 급한 것은 멍든 민생경제에 활기 불어넣는 일
분노와 겁주는 정치로는 해결 못해




배인준 주필

웃음기가 너무 없다. 정치에도 사회에도 없으니 경제와 시장에도 없다. 온통 경직되어 있다. 그저 조심하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 전염병 같다. 꼬투리만 잡히면 죽는다는 두려움에 총리감도 장관감도 수석감도 많이들 숨었다. 자칫하다간 칼 맞는다고, 공무원들은 복지부동(伏地不動) 정도가 아니라 초여름에 지하동면(地下冬眠) 중이다.

한 친구는 지난달 중순 울릉도에 갔는데 일행 말고는 여행객을 구경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관광 철이 그토록 한산하니 그곳 부모들은 육지로 유학 보낸 자식들의 2학기 등록금 걱정에 땅이 꺼질 것이다. 도시 업소들에서 일당(日當) 시급(時給)이나마 받을 수 있는 일자리와 일거리도 눈에 띄게 줄었다. 많은 일용직 근로자들은 언제 일이 끊어질까 하루하루가 초조하다. 이미 허탕 치는 날이 많다. 당장의 생계와 아이들 교육이 막막해지니 헛웃음조차 짓기 어렵다. 이런 서민에게 ‘국가 개조’라는 손에 안 잡히는 거대담론은 잠꼬대보다도 허망한 소리이다.

지금이 어느 땐데 술 마시고 노래하고 놀러 다니느냐고 하는 집단심리와 상호감시가,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든 내수 소비를 더 얼어붙게 만든다. 골프장 손님이 급격히 줄어 생계 걱정이 늘어난 쪽은 경기도우미와 골프장 내 식당종업원 같은 약자들이다. 인과(因果)는 돌고 도는 것이지만 아무튼, 사회가 경직되고 활기가 사라지면 경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부자가 아닌 중산층 이하의 국민은 가계부채의 고통에 시달려왔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회가 밝기보다 어둡고, 웃는 사람보다 찌푸리는 사람이 많고, 분노가 넘치는 나라에는 외국 관광객인들 많이 올 리 없다. 맞이하는 사람들이 부드럽고 웃음이 넉넉하며, 친절하고 활력 있어야 외국인도 신이 나서 찾아오고 즐겁게 돈을 쓸 것이다.

돈도 쓰는 맛이 있어야 쓸 텐데, 내 돈 쓰면서 세상 눈치부터 봐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돈이 숨거나 달아나기 십상이다. 우리 국민의 국내 소비는 줄고 해외 소비는 늘고 있다. 어제도 중국행, 동남아행 비행기는 많은 한국인을 실어 날랐다. 그들 주머니의 달러도 주인을 따라 중국으로, 동남아로 흘러갔다.

나라 안에서 돈이 풀리면 서민에게도 좋을 텐데, 그 돈이 나라 밖으로 줄줄 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골프 쳐서는 안 되는 사람이 너무 많은지도 모르겠다. 자주 외국을 드나들며 놀고 쇼핑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돈을 들고 나간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주체는 정부 이전에 민간이다. 정부는 많은 세금을 거두지만 정작 민생 경제를 위해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복지로 성장을 북돋우고, 나라가 가난을 구제해줄 것처럼 외쳐댔던 선거공약들은 역시 허망하다. 투자도 생산도 민간이 자유롭게 마음 놓고 할 수 있어야, 그리고 범죄가 아닌 다음에는 남의 눈치 안 보고 소비도 할 수 있어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기업하기 좋고 투자하기 쉬운 환경, 각자의 능력 범위에서 하고 싶고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것에 돈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경제가 산다. 그래야 민생의 고통도 덜어낼 수 있다.

물론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부담 능력을 넘어선 과소비는 독약이다. 안 그래도 빚이 너무 늘었다. 부채가 있으면 절약해야 한다. 다만 돈이 있으면 쓸 만큼 써야 하고, 편하게 쓸 수 있어야 돈이 돈다. 돈이 돌아야 빈부 간의 분배도 된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성장 잠재력을 보충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구조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세상은 경제보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내 생각에는 ‘국가를 개조할 국무총리, 경제를 살릴 경제부총리’ 그런 위인(偉人)을 찾는 일보다 국민의 경제심리를 끌어올리는 일이 더 중요하고 급하다. 지금까지 역대 어느 총리도, 어느 부총리도 국민에게 밥을 떠먹여준 위인은 없었다. 온 정치권과 사회운동권이 정부 인사(人事)를 둘러싸고 물고 뜯느라 정작 촉진해야 할 경제와 시장의 활성화에는 건성이다. 미국은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국민과 국가의 총력을 경제에 집중해 위기를 극복했다.

정부와 정치권에 바란다. 겁주는 정치, 성내는 공권력으로, 그 칼잡이 행태로 민생경제를 더 피멍들게 하지 말라. 조금이라도 국민을 신나게 해주고 국민에게 엷은 미소라도 돌려다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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