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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고별

입력 | 2014-06-11 03:00:00


고별
―김상기(1946∼ )

아내가 많이 아프다
눈 꼭 감고 참고 있다가
문득 혼잣말처럼 묻는다
‘날 사랑해?’

나는 화들짝 놀라 대답한다
‘그럼! 사랑하고말고!’

아내가 생전 하지 않던 청을 한다
‘나 한 번 안아 줄래?’

나는 고꾸라지듯 아내를 안는다
목구멍 속으로 비명이 터진다
‘여보! 제발 가지 마!’

이윽고 아내가 가만히 나를 민다
‘이제 됐어… ’
여간해선 울지 않는 아내 눈이 흠뻑 젖어 있다

장례식 날 관 뚜껑을 덮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를 안았다
얼어붙은 눈물
얼음 같은 체온

사람들이 나를 떼어 놓는다
나는 아내를 보낸다
내 남은 삶과 꿈도 함께 보낸다


‘스물여섯에 기자가 된 이후 쓴 시는 이것뿐’이라는 ‘젊은 기자의 초상’을 1974년에 쓰고 시를 놓은 시인이 2011년 가을에 묶은 시집 ‘아내의 묘비명’에서 옮겼다. 병상에서도 현명하고 사랑 깊었던 아내에 대한 절절한 애모의 정이 질박하게 담겨 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버릇 중 하나는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일 테다. 얼마나 이기적인 바람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이의 가장 큰 고통은,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이 사람을 만나볼 수 없다는 것일 테다. 떠나는 이는 남은 이가 자기 없이 어떻게 살까, 오직 그 걱정과 안쓰러움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도 못 느낄 테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크나큰 상실감과 슬픔은 남은 이의 몫. 그걸 겪는 사람이 당신이 아니고 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사랑일 테다.

시인은 병상의 아내를 ‘고꾸라지듯 안는다’. ‘얼음 같은 체온’의 아내를 옆에서 떼어놓을 때까지 부둥켜안는다. 이리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이 없지 않을까. 그러나 사랑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시집을 읽어 보면,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도 더 잘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시인의 ‘남은 삶과 꿈’이 노래가 되기를! 결혼을 보험이나 계약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부부애가 신화처럼 느껴질 테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