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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한기흥]박근혜와 전순옥의 ‘동행’

입력 | 2014-06-12 03:00:00


아버지와 오빠 때문에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빈곤에서 구한 주역이었고, 전태일은 그 산업화의 어두운 그늘에 분신(焚身)으로 항거한 노동운동의 선구자였다. 궁핍한 시절, 입에 풀칠부터 하는 것과 노동자도 인간답게 사는 것 중 무엇이 더 절실한지에 대한 담론은 지금도 무성하다. 박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과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그런 과거에 구애받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2012년 8월 28일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 대통령은 서울 창신동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 했으나 쌍용차 노조원 등이 골목길을 가로막았다. 전 의원도 “재단 방문보다 현재의 노동문제 해결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반대 성명을 냈다. 박 대통령은 청계천6가 전태일 동상을 찾아 헌화하려 했지만 이번엔 노조원들이 꽃을 길가에 버렸다. 박 대통령은 봉제공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1970년 11월 “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몸을 불사른 장소를 돌아본 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화해 협력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발길을 돌렸다.

▷16∼21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국 순방에 전 의원이 동행한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 야당의원의 동참을 거듭 요청했으나 야당이 수용한 건 처음이다. 새정치연합이 전 의원을 추천한 것은 그가 갖는 민주화와 노동인권의 상징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란다. 다분히 박정희와 전태일을 염두에 둔 것이니 여당의 소통 요청에 ‘가시 있는 장미’로 화답한 셈이다.

▷여행은 낯선 이도 친구로 만든다. 성장기를 공주로 보낸 박 대통령과 여공으로 보낸 전 의원은 출신 배경도 다르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전 의원은 영국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아 영어도 자유롭고 기업을 꾸려본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이 차제에 사적인 화해를 넘어 국익을 위해 진지한 초당 외교를 벌이기 바란다. 대통령과 여야에 국민이 바라는 것도 그런 모습일 것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