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 검증] 칼럼 250여편 들여다보니
“사퇴, 말할 때 아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2일 저녁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외출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사퇴할 계획이 없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은 그걸 말할 계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과거 보상 문제는 떼쓰는 꼴”
“일본에 대해 더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 보상 문제만 해도 억울한 점이 비록 남아있더라도 살 만해진 우리가 위안부 징용자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나라 위신을 지켜라’·2005년 3월 8일)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봐야 한다는 논리는 문 후보자의 다른 칼럼들에서도 종종 보인다. ‘기가 꺾인 나라’(2005년 8월 23일)에선 “불행했던 과거만 들추는 나라가 건강한 정신을 가진 나라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칼럼(‘과거의 덫’·2008년 2월 12일)에선 “우리 현실은 이미 어두운 과거를 떨치고 한 걸음 앞서 나갔는데 왜 다시 뒤를 돌아봐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더이상 일본의 책임을 묻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들은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1월 16일에는 “일본은 이웃인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러나 이웃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모델로 우리는 공업화를 할 수 있었다”는 논리를 폈다. 마치 일본 덕분에 한국의 산업화가 이뤄진 듯한 뉘앙스를 주는 표현이다.
한국 근대사와 한일 역사를 연구한 이상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문 후보자의 발언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과 맥락이 닿아 있다. 한국 역사에 일본의 식민지 기간이 근대화와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이론인데 아직은 국민 감정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학계에서는 자유롭게 논의하고 연구할 수 있지만 정부의 주요 공직자가 이런 한 이론에 편향된 경우 한일 관계에 있어서 한국이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선교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간 분당 샘물교회 신도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당하고 2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문 후보자는 이를 놓고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성장통(成長痛)”이라고 표현했다. 과거 문명을 전파하던 유럽이 쇠퇴하고 한국이 대신해 무슬림의 세계로 나가고 있다며 선교사 파견 수가 세계 2위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나라가 번영할 때 정신적 힘이 뒷받침된다”며 “알렌·언더우드 등 미국 선교사들이 19세기 조선을 찾았고 우리는 지금 그 빚을 갚고 있는 것”이라며 선교활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당시 이 피랍사건은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고 일부 교회의 무모한 해외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이 거셀 때였다.
○ ‘박근혜 후보자’는 비난, ‘박근혜 당선자’는 극찬?
문 후보자의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온도차가 보였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 때와 2012년 대통령 당선 이후 달라졌다. 2007년 칼럼(‘권력의 비늘을 떼라’·2007년 7월 10일)에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언급하며 당시 이명박 후보와 맞붙은 박근혜 후보를 향해 “외국의 (여성 대통령) 예를 많이 들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의 정치’다. 자녀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꾸려본 여자들이 나라 살림도 남자보다 더 섬세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며 “박 후보는 이런 경험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박 대통령이 결혼과 육아 경험이 없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문 후보자는 2012년 대선 직후인 12월 25일 칼럼(‘하늘의 평화’)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을 ‘신의 뜻’에 빗대며 박 대통령을 극찬했다. 문 후보자는 “역사의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라며 “중요한 고비마다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던 그가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