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본토 찾아 음악 내공 쌓은 피아니스트 송영주-드러머 이상민

피아니스트 송영주(왼쪽)와 드러머 이상민이 굳이 미국 뉴욕의 비좁은 원룸을 택할 필요는 없었다. 비 김동률 윤상 이소라 박정현 밴드의 연주자로, 실용음악과 교수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그놈의 꿈, 도전….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총성 대신 음향이 난무한다. 록, 재즈, 힙합, 아방가르드…. 전 세계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예술인과 음악가가 모여 들끓는다. 뉴욕의 인디 뮤지션이었던 레이디 가가는 “(뉴욕의) 로어이스트사이드, 할렘, 브롱크스, 브루클린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했다.
미국 최고, 세계 최고 영재가 우글대는 용광로에서 한국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42)와 전방위 드러머 이상민(35)은 4, 5년 맨땅을 두드려 입지를 일궜다. 유명 재즈클럽 ‘블루노트 뉴욕’에 이름을 내걸고 최고급 음악인들과 한무대에 섰다.

2010년 8월 뉴욕 생활에 합류한 송영주는 이상민과 함께 공연도 보고 피자도 먹으며 고단한 삶을 버텼다. “재충전과 도전이란 열쇠를 들고 무작정 떠났어요. 나가서 절 돌아보니 ‘그동안 달리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똑같은 길도 걸을 때, 자전거로 달릴 때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 걸 거기 가서야 알았죠.”
뉴욕 생활은 혹독했다. ‘한국 최고’란 무게도 가벼웠다. 허름한 클럽에서 매일 열리는 무명 음악인의 빼어난 공연은 충격과 공포였다. 이상민은 “젊은이들이 완전히 새로운 음악 형식을 매일 만드는, 살벌한 이들이 사는 마법 같은 곳”이라고 했다. 재즈, 힙합, 전자음악을 뒤섞어 즉흥연주로 녹여내는 공연들은 닫힌 뇌의 빗장을 열었다. 목사의 딸로 곱게 자랐다는 송영주에게 문화 충격은 더 컸다. 4년간의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올 2월 귀국한 그는 “한국에서 음악 하더라도 뉴욕의 자유정신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6집 ‘비트윈’을 낸 그는 15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대흥로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여는 ‘송영주 뉴욕 쿼텟’ 공연에서 니어 펠더(기타)를 비롯한 뛰어난 연주자와 함께한다.(3만∼7만 원·02-941-1150) 이상민은 곧 뉴욕에 돌아가 외로운 싸움을 계속할 계획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