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경제부 기자
최근 한국주유소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석유거래 상황 주간보고를 놓고 팽팽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가짜 석유를 판매하는 주유소를 적발하기 위해 그동안 주유소협회를 통해 매달 한 번씩 보고받았던 주유소의 석유제품 거래 상황을 공공기관인 석유관리원을 통해 매주 한 번씩 보고받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주유소협회는 “정부의 영업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주유소협회에 대한 여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다. 누리꾼들의 댓글을 보면 “이참에 가짜 석유를 팔던 주유소가 모두 폐업했으면 좋겠다”거나 “얼마나 감추고 싶은 게 많기에 그러느냐”는 강도 높은 비판들도 나온다. 정부의 단속 강화에도 소비자를 속이며 가짜 석유를 판매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는데도 별다른 자정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는 주유소 업계에 대해 두둔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부도 “타협은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한 주유소는 310곳이나 된다. 2008년 101곳의 3배 수준이다. 주유소 경영난이 심각해진 것은 주유소가 너무 많아서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현재 전국 주유소는 1만3000곳에 이르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적정 주유소 수는 7000∼8000개”라며 “많게는 절반 정도의 주유소가 적자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주유소가 급증한 것은 정부가 1993년 석유시장 개방 조항이 담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을 계기로 서울 등 6개 도시를 시작으로 주유소 거리제한을 폐지한 데 따른 것이다. 거리제한 폐지로 정유사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신설 주유소에 수억 원의 지원금을 주면서 과당 경쟁을 벌였지만 당시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여기에 2008년 국제 석유가격이 급등하자 정부가 기름값을 낮추겠다며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알뜰주유소를 만든 것도 주유소 경영난을 악화시켰다.
정부가 가짜 석유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민간기업인 주유소의 판매 장부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 외에는 대안이 없는지 의문이다. 경쟁을 강화하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모순된 정책으로는 그동안의 잘못된 정책이 낳은 부작용을 덮기 어렵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