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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경제 나침반’ 기재부 경제정책국에 무슨 일이

입력 | 2014-06-14 03:00:00

안되는 게 없던 경제 브레인들… 요즘은 “되는 게 없어”




“경제정책국 관료로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건 수치라고 생각합니다.”(옛 재정경제부 출신 퇴임 관료)

“이제 경제정책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현 기획재정부 관료)

한국 경제의 틀을 짜고 방향을 진두지휘했던 정부 부처의 명칭이 경제기획원, 재무부,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 기획재정부로 바뀌는 복잡한 역사 속에서도 부처 내 핵심조직은 늘 경제정책국(옛 경제기획국)이었다. 1960∼80년대 압축성장을 주도했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돌파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던 이 경제정책국이 요즘 전례 없는 시련을 겪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수립의 주도권을 청와대에 뺏기는가 하면 국회의 눈치를 보느라 주요 거시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정책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밀어붙이기 통했던 ‘경제의 나침반’

올 1월 박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 경제정책국 출신 전직 장관급 인사는 “경제정책국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1960, 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했던 경제정책국이 이번 3개년 계획 세부작업을 맡게 되면 다시 한 번 경제정책을 총괄하며 한국 경제의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박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이후 두 달 가까이 경제정책국이 준비해 보고한 3개년 계획 세부안은 청와대로부터 외면당했다. 청와대는 “경제정책국이 내놓은 계획이 너무 산만했다”고 평가했다. 과거의 경제정책국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푸대접이었다.

경제정책국의 출발은 1961년 7월 발족한 경제기획원(EPB) 내 종합기획국이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같은 해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고 두 달 만에 국가 경제개발을 총괄하는 조직을 출범시킨 것이었다. 종합기획국은 1963년 경제기획국으로 바뀌어 30년 넘게 유지되다 1994년 재정경제원에 통합되면서 경제정책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과거 경제기획국(경제정책국)은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먹히면서 ‘한국 경제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기획국(경제정책국)이 주도해 1962년부터 1996년까지 진행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1961년)의 후진국이었던 한국을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6205달러(약 2870만 원)의 국가로 변모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경제기획원장을 지낸 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회고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기획뿐 아니라 이례적으로 예산편성권까지 경제기획원에 부여하면서 경제기획국 공무원들은 정책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고 말했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한정된 자원을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입하는 개발계획은 초기에 거센 반발에 부닥치기도 했지만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된 1962∼1966년 사이 국민총생산(GNP)은 연평균 8.5% 성장했다. 당초 예상(7.1%)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다른 부처 감시하는 역할도

역대 경제정책국은 다른 부처의 경제정책을 조율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했다.

초대 경제기획원장을 지낸 고 장기영 전 부총리의 ‘퇴근 이후 회의’가 조율의 대표적인 사례다. 장 전 부총리는 정책을 추진하다 다른 부처와 충돌이 생기면 퇴근시간을 넘긴 뒤 각 부처 장관들을 소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대를 설득할 때까지 저녁도 거르고 밤 12시를 넘기며 회의를 계속하곤 했다.

한 기재부 퇴직 관료는 “경제정책국 출신들은 경제 지식과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며 “내부에서도 정책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여온 것이 정책 입안과 추진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개선점을 찾는 것도 경제정책국의 역할이었다. 1994년 초대 경제정책국장을 지낸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내가 국장을 지낼 때 우리 국은 다른 부처의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소위 ‘시비’를 거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며 “부처가 달라도 정책에 문제가 있을 경우 경제부총리를 동원해서라도 바로잡는 것은 경제정책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출세의 지름길

이처럼 경제정책국이 성장과 물가, 고용, 복지 등 경제 전반을 총괄하다 보니 역대 국장 가운데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가 여럿 나왔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경제정책국장에 대해 “잘되면 부총리, 못돼도 차관은 되는 자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94년 경제정책국이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국장을 지낸 인사는 총 14명이다. 이 중에서 퇴직한 인사 11명 가운데 8명이 나중에 장관이나 대통령경제수석 등 차관 이상의 고위직을 지냈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정책을 이끄는 ‘투톱’인 기재부 장관과 대통령경제수석에 경제정책국장을 지낸 현오석 부총리와 조원동 수석이 임명되면서 관가에서는 “다시 경제정책국의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최종찬 전 건교부 장관,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 등은 경제정책국장 출신으로 각 부처 장관을 지냈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김대유 원익투자파트너스 부회장은 경제정책국장을 지낸 뒤 대통령경제수석으로 근무했다.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인 강봉균 전 의원이나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한이헌 전 의원 역시 경제정책국의 전신인 경제기획국 국장을 거쳤다.

시험대에 선 경제정책국

시절은 변했다. ‘영광의 과거’를 뒤로하고 지금 경제정책국 관료들은 ‘인정은 받지 못하고 고생만 한다’며 푸념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월 19일 추경호 기재부 1차관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안을 사전 브리핑했다. 하지만 그달 25일 박 대통령은 기재부 안을 절반 이상 바꾼 3개년 계획안을 공식 발표했다. 기재부가 전혀 준비도 하지 않았던 ‘통일’ 이슈를 중요하게 다루기도 했다.

기재부 내부에서조차 “어설픈 계획을 내놓아 처음부터 추진동력을 잃었다”는 자성의 말이 나왔다. 경제체질을 바꾸는 큰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으면서도 기밀 유지만 강조하다 다른 부처와 공조하지 못했고, 결국 알맹이 없는 백화점식 졸속정책을 만들었다는 아픈 지적도 받았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는 3개년 계획 추진에 ‘치명타’가 됐다. 정부 내에서조차 관심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3개년 계획을 점검하는 정부 내 국민점검반에 참여하고 있는 한 대학 교수는 “세월호가 경제혁신계획 자체를 집어삼켰다”며 “아직까지 점검할 내용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 한계 인정하고 민간과 소통 필요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정책국이 정책 추진 환경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민간과 소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는 경제정책국이 독점하는 정보가 많아 민간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정책을 만들어 밀어붙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경제의 미래를 그리는 능력이 중요한데 경제정책국 인력들이 ‘좁은 우물’에 갇혀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민간 경제전문가는 “경제정책국 과장과 사무관들이 ‘짜깁기’식으로 정책을 만든 뒤 알맹이 없는 공청회를 거쳐 정책을 만드는 틀을 깨고 정책 수립 초기 단계부터 민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책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진보와 보수로 절반씩 나뉜 한국의 정치 지형 아래서는 경제를 포함한 모든 정책의 추진동력이 이미 국회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정무 기능이 없는 기획재정부, 그중에서 경제정책국이 홀로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해 봐야 힘이 실릴 수 없다”며 “최근 정부가 추진했다가 실패한 경제정책을 들여다보면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국회 및 청와대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후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제정책국 선배들의 충고 “지나치게 보안에 신경… 정책 友軍부터 만들어라” ▼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없이는 경제혁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등에서 경제정책국(경제기획국)을 거친 많은 경제 원로들은 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성공 키워드로 ‘국민의 신뢰’를 꼽았다.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정부의 청사진을 믿고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책국 출신 경제 원로들은 정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와 끊임없이 토론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한국 경제에 왜 필요한지 설득하지 못하면 기업과 정부 부처 등 경제 주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을 맡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정책국이 아무리 혁신적인 정책을 들고나온다 해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TV 토론 등을 통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국민이 계속 떠올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 수립 단계부터 민간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정책의 우군(友軍)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들어 정부가 정책을 만들 때 지나치게 보안에 신경을 쓴다는 지적도 있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을 거치며 경제기획국장, 경제정책국장을 지낸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안을 유지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좋은 정책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민간 전문가와 함께 정책을 만들면 정책의 질도 좋아지고 정책 지지자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고 조언했다.

경제정책국 출신 경제 원로들은 또 경제정책국 후배들에게 ‘공직에 처음 발을 디딜 때 가졌던 초심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관피아 논란 등으로 사기가 떨어지더라도 끝까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 달라는 것이다.

1999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을 맡았던 권오규 전 재경부 장관은 “나중에 장관까지 할 것 같은 촉망받는 후배 관료들이 최근 들어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며 “경제 쪽에 몸담은 공직자에게 경제정책국은 최고의 자리인 만큼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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