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책을 집필할 당시 사라지는 미국의 중산층과 소득불평등의 심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인용한 학자들이 각각 파리경제학교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였던 피케티와 사에즈였다. 사에즈 교수의 버클리대 홈페이지에서 구한 두 사람의 연구논문과 자료는 너무나 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세심하게 집적된 것이어서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들의 연구는 필자에겐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피케티가 바로 그 연구를 확장시켜 낸 것이 최근 서양 지식인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21세기 자본론’이다. 이 책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커다란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곧 한국에서도 번역된다는 소식이다. 미국 중산층의 축소와 소득불평등의 심화에 대해 거의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식으로 고군분투해 왔다고 생각해온 필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다.
우선 피케티의 학자다운 면모가 우리 학계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미국 상위소득계층의 부(富)의 독식과 중산층의 몰락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파르게 심화되었다. 이 현상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의 경제학자 린더트는 올 3월 발표한 논문에서 1920년대 영국 귀족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다운턴 애비’에 등장하는 하인들에 빗대, 현재 미국의 중산층이 그 하인들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을 정도다. 한국에도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하지만 미국 역시 그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올 2월 초 뉴욕타임스는 다양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거론하며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불황으로 자신이 더이상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미국 사람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학자 입장에서 이런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거나 경시할 수 없다. 피케티는 바로 그 학자적 민감성과 몰입을 통해 외골수로 한 우물을 파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연구업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한국 학자들에게서는 피케티가 보여준 이러한 끈질김, 절실함, 자기만의 분야를 끈질기게 천착하는 진득함이 결여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관심도 없다가 막상 서양에서 뜨니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피케티와 그 주장에 대해 진지한 토의조차 없다는 점은 우리 학계의 일천함과 경박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