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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울린 ‘검은 예수’ 드록바

입력 | 2014-06-16 06:40:00

디디에 드록바.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 神이라 불리는 사나이 드록바, 코트디부아르 구하다

TV카메라 앞에 무릎 끓고 내전 중단 호소
전쟁을 멈춘 사나이 ‘검은 예수’ 별명
인슐린 없어 죽어가는 조국의 어린이 본 후
종합병원 설립 위해 52억 쾌척한 굿맨
4년전 일본 반칙에 평가전서 팔꿈치 골절
브라질월드컵 일본전 4분의 기적 환상 드라마

코트디부아르는 대서양과 맞닿은 서아프리카의 나라다. 영어권에선 아이보리코스트(Ivory Coast)로 불린다. 아이보리코스트는 말 그대로 ‘상아 해안’이란 뜻이다. 식민지 시절 유럽으로 향하는 코끼리 상아들이 코트디부아르의 해변을 가득 메운 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이곳은 한때 제국주의 수탈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였다. 독립국가가 된 이후에도 코트디부아르에는 크고 작은 분쟁들이 지속됐다. 2002년에는 내전이 발발해 수만 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피와 눈물의 땅’ 코트디부아르에 평화의 씨앗을 뿌린 것은 바로 축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검은 예수’ 디디에 드록바(36·갈라타사라이)가 있었다.

● 일본과의 악연 되갚은 ‘드록신(神)’

15일(한국시간) 헤시피의 아레나 페라남부쿠에서 열린 2014브라질월드컵 코트디부아르-일본의 조별리그 C조 1차전. 일본은 전반 16분 혼다 게이스케(AC밀란)의 선제골에 힘입어 1-0으로 앞섰다. 그러나 후반 17분 ‘드록신’이 그라운드를 밟자 일본의 운명이 바뀌었다. 코트디부아르는 후반 19분 윌프리드 보니(스완지시티)의 동점골과 후반 21분 제르비뉴(AS로마)의 역전골로 전세를 뒤집었다. 드록바가 교체 투입되자 경기의 흐름은 일순간 요동쳤고, 결국 코트디부아르는 2-1 승리를 낚았다. 이날 경기에서 ‘4분의 기적’을 주도한 드록바는 아프리카가 낳은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드록바로선 4년 전 일본과의 악연을 되갚는 순간이기도 했다. 양국은 남아공월드컵 개막 직전인 2010년 6월 스위스에서 평가전을 치렀다. 드록바는 이 경기에서 툴리오(일본)의 거친 반칙으로 팔꿈치가 골절됐다. 수술과 재활 끝에 기적적으로 부활해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코트디부아르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번 대회가 사실상 월드컵 마지막 출전인 드록바는 코트디부아르의 사상 첫 16강 진출을 꿈꾸고 있다.

● 전쟁을 멈춘 사나이, ‘검은 예수’로 불리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드록신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에 시달리던 2005년 10월, 코트디부아르는 2006독일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드록바는 TV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간곡히 호소했다. “단 1주일 동안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중단합시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에선 잠시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전쟁을 멈춘 사나이’ 드록바는 ‘검은 예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2년 뒤 종료됐다.

드록바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자선사업에도 열중하고 있다. 고국의 가난한 어린이들이 인슐린이 없어 죽어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2009년 고향 아비잔의 종합병원 설립을 위해 300만파운드(약 51억9000만원)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에이즈와 전염병 퇴치, 예방접종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브라질월드컵 직전인 5월에는 터키 소마광산 폭발 희생자를 위해 100만유로(약 14억원)를 기부했다. 이후 “이런 일로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0년 드록바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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