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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허동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입력 | 2014-06-16 03:00:00

“세월호 성금 1016억… 사회 전체가 미안하다는 표현”




허동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1000억 원을 넘긴 세월호 성금은 관련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사용처를 결정할 것”이라며 “바람직한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해 기업 단위의 기부보다 개인 기부가 더 늘어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파는 시대다. 물건을 팔아 가치를 축적해 온 우리 사회가 이제는 가치를 내세워야 물건을 팔 수 있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단언컨대, 가장 가치가 올라간 가치는 나눔, 봉사, 기부, 배려 등으로 표현되는 ‘상생(相生)’의 노력이다.

적십자만 있던 우리 사회에 최근 20여 년간 꽤 많은 사회복지단체들이 태어났다. 그 맏형 격이 ‘사랑의열매’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특별법에 의해 탄생한 유일한 모금단체이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TV 아나운서들이 옷깃에 사랑의열매를 달고 나오는 것도 공동모금회의 대표성을 보여준다.

몇 달 전 모금회의 수장이 조용히 바뀌었다. ‘조용히’라고 한 것은 새 수장이 언론 인터뷰를 꺼려서다. 주인공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71). 이해가 간다. 대기업 오너로서 굳이 언론에 나설 일이 없었던 게 모금회장의 업무 스타일에도 영향을 줬을 듯하다. 그러나 그도 인터뷰에 응할 일이 생겼다. 안타깝지만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모금회가 직접 모금 활동에 나서지 않았는데도 15일 현재 1016억 원(개인 113억 원, 기업 903억 원)이나 되는 성금이 답지했다.


각계 참여 ‘모금 태스크포스’ 설치

이달 9일 그를 만났다. 먼저 성금을 어떻게 쓸지부터 물어봤다.

“사고의 특성상 유족 대표와 기부자단체, 사회복지단체, 언론 등 각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충분히 논의해 합의를 이끌어낼 생각입니다. 시기는 아무래도 사고 수습이 일단락되고, 책임소재 규명과 정부 보상방안 등이 가닥을 잡은 뒤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허 회장은 성금이 전부 유족들에게 배분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기부자들이 세월호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도록 해 달라는 요구도 많이 했던 만큼, 그런 의사도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금의 일부는 민간 차원에서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도 쓰이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두 달 만에 세월호 성금이 1000억 원 넘게 들어오는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허 회장은 빛과 그늘을 동시에 보고 있는 듯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아시다시피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의 모임인데, 2007년 12월에 시작해 6년 반 만에 514명이나 됐습니다. 회원 대부분이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사회로부터 받은 고마움을 갚겠다는 뜻이겠지요. 익명으로 가입한 사람도 80명 가까이 되는데,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도 몇 분 계십니다. ‘품격 있는 나눔’의 대명사로 외국에서도 관심이 높습니다.” 그도 모금회장을 맡은 뒤 장남과 함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네 번째 부자 회원이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가 빛이라면, 그늘은 개인 기부가 적다는 것이다.


자긍심 높여 개인 기부 늘릴 것

“현재 모금회에 들어오는 성금 구조는 개인 대 기업이 3 대 7쯤 됩니다. 미국은 개인 기부가 80%쯤 됩니다. 적은 액수라도 풀뿌리 기부가 많아야 기부 문화가 건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금회의 개인 기부자는 2010년 50만 명을 넘어섰고, 작년에 74만 명이 됐지만 더 늘어나야 합니다. 개인 대 기업의 기부 비율을 5 대 5로 만드는 게 우선의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유독 기업 기부가 많은 걸까. 대기업 회장의 분석은 명쾌했다.

“우리 기업들이 급속 성장을 하면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경쟁과 효율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국가와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면, 기업도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는 “개인 기부를 늘리려면 기부자의 자긍심과 만족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를 더 빠르고 소상하게 알려주고, 신청 절차도 더 간소화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개인 기부를 늘리는 효율적인 방법으로는 기업인답게 직장인의 정기 기부 확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두 가지 용어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다. 그 속에 그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그는 그 철학을 모금회에도 적용하고 있었다.


모금회 운영 검증시스템도 강화

“좋은 기업, 좋은 기업인은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주체들, 즉 고객들의 입장이 돼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기업은 지속가능할 수 없습니다. 모금회의 고객은 기부자와 지원 대상자입니다. 모금회는 기부자의 입장에서 성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지원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그걸 못 하면 모금회도 지속가능할 수 없고, 존재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의 말은 5개월 전인 1월 15일, 취임사 요지와 똑같다.

2월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4년 사랑의 온도탑’ 폐막식. 모금액이 처음으로 5000억 원을 넘었다.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허동수 회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허 회장이 지향하는 역지사지는 모금회를 투명하게 운영함으로써 기관의 도덕성과 신뢰를 유지하는 일과도 직결된다. 그는 “모금회도 법정단체라는 프라이드만으로는 안 되고,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검증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젊잖게 말을 이어가던 그가 딱 한 번 농담을 했는데, 그것도 역지사지라는 말을 설명할 때였다. “역지사지는 어디서나 다 되는데 부부 관계에서만큼은 안 된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그가 회장에 취임해서 한 달 반쯤 됐을 때 서울에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곧바로 ‘찾아가는 위기가정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허 회장은 “경제강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최소한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미 긴급지원사업이 있긴 한데 그런 제도가 있다는 걸 모르거나, 알면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말까지 50억 원을 별도로 책정해 한국사회복지관협회와 함께 각 지역에서 대상자를 찾아내거나 신청을 받아 5월 말까지 387개 가구를 급히 지원했습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허 회장이 강조한 ‘고객 중심’ ‘세심한 배려’의 실천 모델이라 하겠다.

요즘 모금단체 사이에서도 은근히 경쟁심이 작동하고 있다. 해외를 무대로 하는 단체도 많다. 일각에서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 질문에 의외의, 아니 글로벌기업 총수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기부자들의 관심과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람을 돕는 일에 국경이나 인종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20∼30년 전까지는 외국의 원조를 받지 않았습니까. 우리 정도의 나라라면 남을 돕는 데도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나눔문화 확산, 가정-학교교육 중요

그는 한국의 모금 문화는 유년기를 막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장년기를 앞당길 수 있을까.

“가정교육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을 롤 모델로 삼아 어려서부터 나눔을 경험한 아이들은 커서도 자연스럽게 나눔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에 나눔교육을 포함시키면 효과가 더 크겠지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 중입니다. 언론도 나누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합니다.”

1998년 모금회 발족 이후 7명의 회장이 거쳐 갔다. 대기업 회장 출신은 그가 유일하다. 인터뷰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왜 모금회 회장을 맡게 됐느냐고.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대기업 총수가 구태여 이런 자리를 맡은 이유가 궁금해서다.

“사실은 요청을 받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랑의열매’는 알고 있었는데, 그게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는 것은 몰랐습니다(솔직하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고…. 그렇지만 내가 필요하다면 기여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은 이왕 할 바에야 잘해 보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모금회에 접목시키면 잘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는 GS칼텍스에서만 40년, 그중 19년을 최고경영자로 일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석유화학제품으로 2012년 업계 최고상인 ‘250억 달러 수출탑’을 받은 건 그의 외길 인생에 대한 훈장이다. 그 과정에서 ‘미스터 오일’ ‘미스터 에너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금회장을 수락하는 데 힘을 준 경험은 따로 있다. 그는 2006년 GS칼텍스재단을 만들어 1000억 원을 출연했다. 그 돈으로 불우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홀몸노인에게 무료급식 사업도 해오고 있다.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수에 복합문화공간 예울마루를 건립한 것도 그였다.

모금회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모금 첫해인 1999년 214억 원이었던 모금액이 지난해에는 5000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 목표도 5000억 원. 한국의 모금회는 세계공동모금회에서도 ‘빅5’에 들어간다. 허 회장이 임기 3년 동안 ‘나눔의 기름칠’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길 기대해 본다. 그의 별명에 걸맞게.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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