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채널A 차장
이사회는 9일 길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안전행정부에 제출했다. 같은 날, 길 사장은 이사회 해임 결의 무효 소송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냈다.
길 사장의 주장에 따르면 이사회는 해임 제청 안건을 처음 심의한 5월 26일 해임 건의를 하는 첫 이유로 ‘길 사장의 보도 통제 의혹에 대한 잇따른 폭로로 KBS 공공성과 공신력의 지속적 훼손’을 꼽았다.
길 사장은 ‘사태 촉발의 원인인 보도 통제 혹은 개입에 대한 사실 확인은 하지도 않고, 그 결과인 리더십 상실을 이유로 해임을 결정한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길 사장을 편들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이성과 상식에 기대본다면, 보도 통제나 개입에 대한 확인과 검증을 하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긴 힘들다.
이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KBS가 길 사장 해임 이후에도 여전히 공정 방송 구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 선임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포함해서다. 여당이 다수인 이사회 구조에서 이사회가 추천한 인물을 대통령이 선임하는 현 방식으로는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보도 개입 문제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처음 주장했고, 보직을 사퇴한 KBS 부장들은 “김 전 보도국장의 폭로가 충분히 사실로 받아들일 만하다”고만 밝힌 상태다.
길 사장이 소장을 제출한 날,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KBS 이길영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 이사장은 “나는 그것에 대해 코멘트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언론 업무를 맡은 이사는 ‘의견 없습니다. 조만간 정리가 되리라고 봅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만 보내왔다.
KBS 사장이 보도 통제나 개입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사회는 그것을 기록화하고 객관화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다면 공정 방송을 위한 후속 제도 마련에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건 또, 비슷한 방식으로 사장을 임명하지만 KBS와는 다른 영국 BBC를 좇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방송의 독립은 제도만으로 완벽하지 않고, 방송사의 조직 문화와 사회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허진석 채널A 차장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