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프리앙, 그림자, 1891년
의자에 앉은 남자가 여자의 두 손을 붙잡고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도 여자는 그의 눈길을 피하고 있다. 두 남녀는 어떤 관계일까. 몇 가지 상황설정을 해보자.
사랑이 식어버린 여자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 깊이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연인들. 혹은 짝사랑하는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거나 여자가 남자의 유혹을 뿌리치는 순간을 그린 것인지도.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에서 포레스티에 부인은 뒤루아의 구애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충고한다.
‘난 사랑에 빠진 남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사랑에 빠진 남자는 바보가 되죠. 그냥 바보가 아니라 위험한 사람이 돼요.(…) 난 남자들한테 사랑이 참을 수 없는 욕정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내게 사랑은 일종의 영혼의 교감 같은 거죠. 남자들이 믿는 종교에는 없는 거랍니다.’
그림자 덕분에 이 그림과 모파상의 소설을 연결 짓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더 큰 기쁨은 그림자를 빌려 감정을 전달하는 그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