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3, 4년간 전문과목을 수련하는 전공의(레지던트)들. 야간 당직이 잦고 업무 강도가 높다.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 수련의는 근로자 아닌 피교육자
하지만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배 의사들의 도전 정신과 사명감으로 가득 찬 노력은 강하기 때문에 후학들의 세상이 오면 의사도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나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하나 해본다. 수련 중의 전공의(레지던트)는 근로자일까? 혹은 피교육자일까? 둘 다 맞다. 그러나 한 가지만 고르라면 피교육자에 포함시키고 싶다.
전공의의 하루는 한마디로 끔찍하다. 업무는 시작과 끝이 없다. 24시간 중 잠시 눈 붙일 때가 끝이고 다시 눈뜰 때가 시작이다. 기본 교육(근로)만 수행하는 것도 어려운데 예고 없이 찾아온 응급 환자라도 한 명 추가된다면 실력도 짧고 최고전문가도 아닌 상황에서 환자를 살려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이때 이들의 심신 상태는 ‘이틀 밤잠 안 재우는 고문을 당한 후 러시안룰렛용 권총 앞에 앉은 것 같은 상태’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전공의들은 노동 강도를 보면 ‘한계직업 노동자’이고, 환자를 살리는 기술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미래를 꿈꾸는 피교육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물어보고 설명해주고 검사하고 치료하는 단순 반복 훈련을 통해 눈감고도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한 명품 의사가 되는 것이 수련의 이유이고 기본 목표이다.
● 편한 수련 생활은 길게 보면 독
다행히 2011년부터 시작된 전공의 수련환경 모니터링 평가단 노력이 결실을 봤다. 2014년 4월 1일 공표된 전공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은 전공의 수련의 질과 근무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즉 ①주당 최대 80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②하루 반 이상 연속해서 병원에 머무르는 일이 없다. ③응급실도 최대 1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없다. ④당직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없다. ⑤당직수당을 현실화한다. ⑥최소 10시간은 휴식을 한다. ⑦한 달에 적어도 4일은 휴일이다. ⑧1년에 14일은 휴가이다.
피로 누적은 치료 결과와 직결되므로 환자의 안전과 의료 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잘된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의 목표가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간과되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이 자꾸 근로자의 근로조건 쟁취와 유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수련 기간은 짧고(기껏해야 4, 5년) 전문의로 사는 기간은 평생이다. 그런 점에서 편한 수련이 항상 좋은 수련은 아니다. 본인의 책임이 비교적 작을 때 하나라도 더 잘 배워서 홀로 섰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과 지혜로 대처할 수 있는 의사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수련 기간을 강도 높은 교육으로 보내면 보낼수록 사고치지 않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 홀로 선 후에는 외로운 선택과 결정을 수없이 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일생이다. 수련 기간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1초도 버릴 것이 없는 아까운 자산이다. 잠시 머무르는 수련 기간을 피교육자로서 항상 끌려다니는 ‘을(乙)’ 노릇이나 편한 방법 찾기에 소모하기보다는 미래의 ‘갑(甲)’을 준비하는, ‘슈퍼맨’이 되기 위한 혹독한 학습 기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공의들이 미래의 암울함을 걱정하면서 행동에 나서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자의든 타의든 투쟁이나 파업전선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현실이 서글프다.
● 名醫보다는 眞醫로 거듭나야
의사가 되고 싶은 후배들이 부디 좋은 근무환경에서 수련을 받아 ‘진의’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