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저작권센터서 인세업무 대행… 천안함 폭침후 대북제재… 돈 묶여 인세 내지 않아도 법적문제는 없어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시절의 백석(왼쪽 사진). 1980년대 중반 촬영한 백석의 가족사진. 오른쪽 아래가 백석이며 옆이 부인 이윤희 씨, 뒤는 둘째 아들 중축 씨와 딸 지제. 동아일보DB
백석은 ‘이북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1987년에야 창비에서 첫 시선집이 나왔다. 이후 문단과 학계의 뜨거운 관심 속에 백석의 여러 저작이 남한에서 출간됐다. 모두 저작권 협약 없이 펴낸 출판물이었다.
2009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북한 작가동맹 중앙위원회와 북한 저작권사무국으로부터 백석을 비롯해 시인 이용악, 소설가 송영 한설야, 동화작가 현덕 등 북한 작가 10명의 저작권을 위임받았다. 재단 산하 남북저작권센터에서 북한 작가 10명의 저작권 업무를 대행한다.
하지만 이 돈은 남한에 묶여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5·24 대북 제재 조치가 나온 뒤에는 북측으로 현금을 보낼 수 없게 돼서다. 남북저작권센터 측은 “현금 반출이 되지 않아 인세를 물건으로라도 보내려고 했는데 안 됐다. 인세를 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저작권센터가 위임받은 북한 작가의 저작권은 2009년에 맺은 10명이 전부다. 그 이후로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추가 협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10명 이외에 저작권 보호기간인 사후 70년이 지나지 않은 북한 작가는 출판사가 알아서 저작권 문제를 처리한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펴내는 창비는 남한에 생존해 있는 작가의 먼 친척에게 인세를 지급한다.
출판사 측이 남북저작권센터에 ‘북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알려진 ○○○의 저작을 이용하고자 하니 센터에서 저작권 상황을 파악해서 적법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뒤 출간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필수사항은 아니다. 한 출판사의 저작권 담당자는 “남북저작권센터의 법적 지위가 분명하지 않고 인세를 내지 않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저작권의 기본인 북한 작가의 생몰연도조차 제대로 확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출판계에서는 센터를 미심쩍게 여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조선작가동맹 위임장에 백석의 맏아들 백화제가 서명한 것으로 돼 있는데 그 서명이 진짜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