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서도 문창극 사퇴론 확산]
신진우 기자
나는 학생이고, 지도교수는 학교에서도 이른바 ‘실세’ 교수다. 학위 통과 여부는 물론이고 논문 제출 시기까지 그가 좌우한다. 석사 논문이 통과되고 몇 달 뒤 교수가 내 논문을 발췌한 수준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다. 제목, 구성, 내용까지 거의 일치하는 사실상의 요약본을, 그것도 본인이 제1저자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게 정상인가.
그런데 ‘그분들’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치부했다. 일단 학생들이 흔쾌히 동의했다고 했다. 또 학생 단독으로는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가 쉽지 않으니 학생 입장에서도 이득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분들은 바로 교육계를 이끌 두 수장(首長)인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송광용 신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다. 제자들의 논문을 ‘가로챈’ 이들은 모두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생을 위해서였다”고 떳떳하게 밝혔다.
결국 이 ‘당당한’ 표절의 접점은 연구 실적 쌓기와 맞닿아 있다. 제1, 제2저자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제1저자가 논문 한 편당 100%의 실적을 인정받는 반면에 제2저자의 경우 그 비율이 50% 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했다. 학교에서 200%의 연구 실적을 요구할 경우 제1저자일 때에는 논문 2편만 필요하다는 얘기다.
동아일보의 보도 이후 학계에선 반응이 뜨거웠다. 대체로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면죄부를 주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논문 연구 과정에서 도와준 게 사실이고, 학생 동의 없이 학술지에 실은 것도 아닌데 지금의 비난은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견해다.
지도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지도해주는 건 당연한 의무다. 기자와 친분이 있는 미국의 한 사립대 교수는 “그럼 학생 10명을 지도하면 제1저자로 쓸 수 있는 논문 10편은 기본적으로 확보하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그렇게 발표한 논문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그 책임까지 제1저자인 교수가 지겠느냐”고 했다.
사실 학생에게도 잘못은 있다. 국내 대학원 생태계에서 교수가 절대자로 군림한다는 사실은 백번 이해해도, 적어도 상아탑에선 그렇게 무책임하게 지식재산권을 포기해선 안 된다.
신진우·정책사회부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