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사업 878건 예산 낭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이명박 정부가 2009년부터 추진한 ‘자전거 인프라 구축 사업’을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꼽았다. 지난해 7월 폭우에 떠내려 온 부유물로 뒤덮인 강원 춘천시 북한강 자전거도로. 동아일보DB
국가 부채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 부처들의 예산 낭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균형재정’과 예산 절감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줄줄 새는 나라 곳간은 방치해 놓고 있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예비타당성 조사 등 현행 예산 낭비 감시 기능을 전면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혈세 낭비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경제성 검토도 안 한 자전거 도로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는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현행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거나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건설 사업은 반드시 이 조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부터 추진한 ‘자전거 인프라 구축 사업’은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업으로 꼽혔다. 1조205억 원(국비는 약 4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해안 주요 도시를 5820km의 자전거 도로로 연결하는 대규모 건설 사업인데도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았다.
특히 자전거 이용자 상당수가 도심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도심에서 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당시 행안부는 제대로 된 수요조사도 없이 예산 대부분을 해안 도시들을 연결하는 장거리 자전거 도로에 쏟아 부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이 지난해 건설이 완료된 14개 자전거 도로 구간의 자전거 통행량을 조사한 결과 10개 구간은 시간당 10대 이하였고, 이 중 2개 구간은 1시간에 1대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제대로 된 사업 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으로 수천억 원의 혈세를 날린 셈이다.
○ 외풍에 무력화된 예산 낭비 감시 제도
감사원이나 국회로부터 여러 차례 예산 낭비 사업으로 지적을 받고도 계속 추진되는 사업들도 있었다. 463억 원을 들인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육성 사업은 지원 대상 인원을 잘못 예측해 매년 40%가량의 예산을 남겨 2011년부터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는데도 올해도 1100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예산을 지원한 사업도 예산 낭비 사례로 꼽혔다. 국산 대형 풍력발전기 수출을 지원하겠다며 2010년부터 827억 원(국비 579억 원)을 들여 ‘새만금 대형 풍력 시범단지 사업’을 추진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입지 선정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는데도 사업 추진 지자체인 전북도에 122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 풍력 단지 사업은 결국 무산됐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예산 낭비 사업들이 계속 추진되고 있는 것은 이들 사업 상당수가 정부가 국정 과제로 추진하거나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들어간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녹색성장을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가 자전거 도로 건설 사업을 벌일 때 이를 예산 낭비라고 막아설 만한 공무원이 누가 있겠나”라며 “예산안 통과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 끼워 넣기가 반복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세무학)는 “혈세가 낭비된 뒤에는 이를 보전할 방법이 없는 만큼 재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사전 감사 권한을 확대하고 부정확한 사업성 검토에도 예산 낭비 사업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