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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화FC “메시 오빠도 내 태클은 못피할걸”

입력 | 2014-06-18 03:00:00

인문계 서울 배화여고 축구동아리 “우리의 열정은 월드컵보다 뜨겁다”




까맣게 멍이 든 발톱, 인대가 늘어나 부풀어 오른 발목, 시퍼런 무릎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공을 차며 입시 스트레스를 푼다. 브라질 월드컵에 한창 들떠 있는 서울 배화여고 축구클럽 배화FC 학생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축구는 미드필더 싸움이라 미드필더에서 볼 점유율이 높아야 해요. 공격형 미드필더 이청용 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 선수가 잘한다면 초반 기 싸움에서 질 일은 없을 것 같아요.”(배화FC 주장 나은영 양·17)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의 배화FC 축구 동아리 여고생 20명에게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고교 입학 뒤 축구를 시작하고 맞는 첫 월드컵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이 여고생들은 남다른 마음으로 한국팀을 응원하고 있다.

대입 준비로 쉴 틈이 없는 일반고에서 이 1, 2학년 여고생들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부를 꾸려 왔다. 이들은 거의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학원 갈 시간을 쪼개 학교 운동장에 나와 축구 연습을 한다.

배화FC는 2009년 축구를 좋아하는 양진택 배화여고 체육교사와 재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축구를 하고 싶지만 여자인 데다 여고에 다녀 운동장을 뛸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간신히 13명의 학생이 모였고 배화FC가 출범했다. 초기엔 초등학생팀과의 친선 경기에서도 완패할 만큼 실력이 부족했다. 양 교사는 “계속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 축구를 하는 여고가 없었기 때문에 경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양 교사는 포기하지 않고 일면식도 없는 인근 여고 교사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가까운 상명여고, 풍문여고, 덕성여고 체육교사들을 만나 닭갈비를 사주며 “축구를 해보자”고 설득했던 것. 서울 종로구 인문계 여고 축구리그는 이렇게 시작됐다.

축구하는 여고생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윤수영 양(16)은 “공부에 지장을 받지 않느냐며 싫어하는 엄마를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윤이 양(16)은 “여고생들이 축구를 한다는 걸 마냥 신기하게만 보거나 ‘제대로 하겠어?’라며 조롱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학원 등 일정으로 보통 경기에 참여하는 학생은 13명 정도. 전후반 40분 동안 여기저기 뛰고 구르다 보면 인대가 늘어나거나 타박상을 입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워낙 수가 적어 부상이 있어도 제대로 교체하기도 어렵다. 처음엔 제대로 된 유니폼도 없어 학교 체육복을 입고 뛰었다. 규칙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한 결과 지난해 10월 상명, 덕성, 선린, 계성, 풍문여고가 참여한 제1회 중부 여자축구경기에서 배화여고는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미드필더 김현수 양(16)은 “처음에는 공을 쫓아 뛰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여유도 생겼다”며 “후반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고 힘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입시 부담 탓에 무기력하고 냉소적이었던 성격이 축구를 하며 밝아졌다고 배화FC 부원들은 입을 모은다. 부원 모두 축구를 사랑하는 여고생으로서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내길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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