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그에 반해 우리 집은 4남 1녀에 아버지 혼자 동사무소에 다녔으니 살림살이가 빠듯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아, 지금도 생각나는데, 이 형네 집에 놀러 가면 얼마나 진기한 것들이 많던지, 내가 난생처음 소니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은 것도 이 형네 집이었어. 가만있었으면 몰랐는데, 이 형네 집에만 다녀오면 왜 그렇게 우리 집이 가난해 보이던지, 뭐, 그런 게 상처가 된 거지.
시간이 흐르고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던가, 아마 그때부터 이 형이 본격적으로 가수를 하겠다고 서울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을 거야. 형은 공부 같은 건 놓아버린 지 오래고, 매주 서울에 올라가 작곡가한테 노래 수업을 받는다고, 그 한 달 수업료가 아버지 월급만큼 된다고, 그렇게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도 했지. 실제로 고모 집에 놀러갔다가 몇 번 형이 기타를 튕기며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꽤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집 첫째 형 이야기는 좀 달랐어. 동네에서 좀 한다고 다 가수가 된다냐? 서울엔 그런 애들 쌔고 쌨다. 첫째 형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또 그런 것도 같더라고. 그냥 평범한 실력인데 우리 사는 도시가 워낙 작으니까 튀어 보이는 거라고, 뭐,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지.
7년 전이던가, 고모부 돌아가셨을 때 오랜만에 얼굴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방 소도시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 다니면서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고종사촌형인데. 이젠 천천히 남이 되어가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
내가 다시 형의 소식을 들은 것은 두 달 전의 일이었어. 둘째 형과 전화를 하다가 툭 그 말이 나온 게야. 걔가 폐암에 걸려서 오늘내일한다더라. 이제 겨우 40대 중반인데…. 그러니까 너도 건강 조심해. 뭐, 그런 이야기가 오간 거야.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해 한 번 병원에 찾아갈까, 생각했지만 결국은 가지 못했어. 일도 바쁘고, 또 병원도 멀었으니까. 몇 번 형네 집에서 함께 들었던 소니 워크맨 생각만 떠올랐을 뿐이지….
엊그제가 바로 그 형의 장례식이었어. 그러니까 그 장례식 전전날, 내가 병원에서 본 풍경 하나에 대해서 말해주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거야. 왜 거, 염이라고 하지. 죽은 사람 깨끗하게 해주고 수의 입히는 절차 말이야. 그 형 염하기 전에, 가족들하고 작별 인사할 때 나도 따라 들어갔거든. 다들 죽은 형의 손을 한 번씩 잡아보고 좋은 곳으로 가세요, 인사하는데, 그 형 딸아이 말이야,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내 5촌 조카가, 제 아빠 얼굴을 쓱 한 번 문지르더니, 귀에서 뭔가를 쑥 빼내는 거야. 그러면서 ‘아빠, 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하더라고. 그게 뭔지 알겠어? 나도 처음엔 몰랐는데… 그래, 그게 바로 보청기였어. 알고 보니 이 형이 교통사고 당했을 때, 그만 청력도 많이 손상되었다나봐. 그런데도 그 귀로, 그 청력으로, 20년 넘게 가수 생활을 한 거였지…. 그걸 이 세상에서 오직 딸만 알고 있었던 거고. 나? 나는 형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왔어. 그저, 그 형이 고장 난 귀로 살아온 20년을 생각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고.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