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미(1957∼ )
여기는 꽃밭이라는데
꽃에 앉았던 나비가 포르르 날아
아무렇지도 않게 내 가슴에 앉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때문에 나는 놀란다
움직일 수도 없고 나비를 잡을 수도 없다
살인자를 쳐다보는 아기의 푸른 눈동자
그 속에 내가 비친다
나는 교묘히 머리를 써서 나비를 잡을 수도 있고
한 송이 향기로운 꽃인 듯 아량을 베풀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어리석게 손을 휘젓는 바람에 나비는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무게도 없는 나비가 잠깐 가슴에 앉았다 날아갔는데
한순간이 바윗덩어리보다 무거웠다
그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개나 고양이나 염소나, 무당벌레나 여치나 방아깨비 앞에서 마음이 편할 것이다. 꽃도 나비도 마찬가지다. 그 앞에서는 나이도 직책도 잘남도 못남도 다 잊고 어린애처럼 순수해질 것이다. 꽃밭에서 화자는 그 부드러운 방심에 빠져 있다. 한 나비가 포르르 날아와 가슴에 앉을 정도로. 작은 생물이 저를 경계하지 않고 곁을 주는 건 묘한 감동을 준다. 그 감동으로 화자의 방심이 부드럽게 깨진다. 화자는 나비가 날아갈까 봐 숨도 제대로 못 쉬었을 테다. 내가 어떻기에 내 몸에 앉아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물론 화자는 나비를 싫어하지 않지만 당황해서 ‘손을 휘젓는 바람에 나비는/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나비를 놀라게 한 데 대한 후회와 나비가 날아가 버린 아쉬움이 ‘어리석게’라는 말에 담겨 있다.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가 날아간 짧은 시간이 한 행마다 행을 떼는 형식으로, 최면에 걸린 듯 느릿느릿, 선명하게 흘러간다.
어쩌면 이 시는 사랑의 시일지 모른다. ‘여기는 꽃밭이라는데’, 어여쁜 꽃이 지천인데, 한쪽에 비켜 선 화자에게 사랑인가 싶은 나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와 앉는다. 어떤 자의식이 화자를 움직일 수도 없고 나비를 잡을 수도 없게 한다. ‘살인자를 쳐다보는 아기의 푸른 눈동자//그 속에 내가 비친다’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사랑은 두려워! 자의식과 관능의 작은 전투를 보는 듯하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