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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4만 9000원’ 육군병장 이근호, 상상을 현실로

입력 | 2014-06-18 19:10:00


거수경례 세리머니 이근호(상주상무)가 18일 러시아전에서 후반 선제골을 넣은 뒤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현역 육군 병장인 이근호는 “골인을 확인한 뒤 마구 달리는 와중에도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쿠이아바=GettyImages 멀티비츠

"서러움을 떨치는 상상을 하면서 월드컵을 기다렸는데 오늘 현실이 됐다."

4년 전 오스트리아의 한 호텔 휴지통에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집어던지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이근호(29·상주 상무)의 꿈이 현실이 됐다. 18일(한국 시간) 러시아와의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후반 23분 대표팀의 선제골을 터뜨린 이근호는 4년 전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개막을 불과 열흘 앞두고 발표된 23명의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 것이다. 최종 엔트리 발표 당시 대표팀은 예비 엔트리까지 포함해 26명의 선수가 오스트리아에서 막바지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근호는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맹활약하며 당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황태자로 불리기까지 했지만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로 월드컵 무대 데뷔의 꿈을 날렸다. 이 때문에 이근호는 축구가 재미없어질 만큼 목표를 잃고 잠시 방황하기도 했다.

4년 전의 쓰라린 경험 탓에 이근호는 지난 달 8일 TV로 생중계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도 마음을 졸이며 지켜봤었다. 그는 "4년 전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종 엔트리 발표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홍 감독은 전체 23명의 엔트리 중 이근호의 이름을 끝에서 세 번째로 불렀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 이근호는 자신의 다짐도 실현시켰다. 이근호는 러시아전을 앞두고 대표팀의 브라질 내 베이스캠프인 포스두이구아수에서 훈련하던 13일 "30, 40분을 뛰더라도 90분의 체력을 쏟겠다. 일단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모든 체력을 다 쏟고 나온다는 각오로 뛸 것이다"고 했다.

후반 11분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과 교체 투입된 이근호는 후반 추가 시간까지 38분 동안 4.896km를 뛰었다. 이날 경기의 전후반 러닝타임은 95분이었다. 이근호가 선발로 나서 풀타임을 뛰었다면 12.24km를 달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 중 가장 많이 뛴 한국영(11.356km)보다 더 높은 수치다. 이근호는 또 출전 시간 38분 중 15%가 고강도 활동 시간으로 측정돼 김보경(출전 시간 8분, 고강도 활동 16%)에 이어 팀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활동량 때문에 이근호에게는 '말근호'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날 이근호는 월드컵 데뷔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로 거수경례를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 달 월급으로 14만9000원을 받는 국군체육부대 소속의 육군 병장이다. 그의 강한 중거리 슛을 막다 놓친 러시아의 골키퍼 이고리 아킨페예프는 연봉 200만유로(28억 원·2011년 기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이 들어갔다는 걸 확인한 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그냥 마구 달렸다"는 이근호는 "그 와중에도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근호의 골이 터지자 대한민국 육군 트위터(@ROK_Army)에는 곧바로 '2014 월드컵 대한민국의 첫 골을 기록한 이근호 선수! 육군 병장의 힘'이라는 축하 메시지가 올랐다.

귀중한 선제골로 팀에 승점 1을 안긴 이근호는 "정말 운이 좋았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가 작용한 것 같다. 결승골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6분 만의 동점 골 허용을 아쉬워했다.

쿠이아바=이종석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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