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광화문광장은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를 전광판으로 지켜보며 응원하는 붉은색 인파로 넘쳤다. 전날 저녁부터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밤을 꼬박 새운 열혈 팬도 적지 않았다. 이 사람들, 명절 때면 피붙이끼리도 음식장만 설거지 고스톱점수 진학 취직 결혼 등 별별 일로 티격태격하고, 평소에도 혈연 학연 지연과 이념으로 나뉘어 옥신각신하기 일쑤인 우리 이웃들 맞나 싶다. 신명나게 한바탕 즐긴 뒤 무승부로 끝난 경기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깔끔하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월드컵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 못 이루는 것은 모든 출전국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쟁 지역을 뺀 지구촌 대부분이 그 마법에 홀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라질 대회가 끝나는 다음 달 14일까지 글로벌 커뮤니티의 가장 큰 화제의 하나가 월드컵이 될 테니 그에 가려지는 중요한 이슈들도 많을 것이다. 골치 아픈 일이 많은 위정자들에게는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 터. 이런 이벤트가 4년에 한 번뿐인 게 유감일지도 모른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