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여야 가릴 것 없이 툭하면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금도를 벗어나지 마라’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의미의 금도는 아직까지 국립국어원 웹사전의 표제어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식인이나 칼럼니스트들조차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의미로, 사전에 올라 있는 다른 뜻의 금도(襟度)를 사용하는 일이 잦다. 가물에 콩 나듯 ‘금도(禁度)’라는 뜻으로 쓴 글도 있지만 대개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알아서 이해하라는 식이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면서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금도(襟度)의 ‘금(襟)’은 ‘옷깃이나 마음’을, ‘도(度)’는 ‘정도나 도량’을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의미다. ‘넘지 말아야 할 선’과는 뜻이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그의 배포와 금도에 감격했다’처럼 써야 옳다. ‘금도를 보이다, 금도를 베풀다, 금도가 있다’ 식으로 쓰는 것도 좋다.
일부에서는 금도(禁度)라는 말이 우리말은 물론이고 중국어와 일본어에도 없는 국적 불명의 말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말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언중임을 잊어버린 소치다. 언중이 많이 쓰고 우리말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사전에 올리는 게 단언컨대, 맞다. 적당한 말이 없어 ‘대접’을 자꾸 ‘접시’라고 한다면, 접시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대접’이라는 단어를 만들면 된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