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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마이크로코스모스

입력 | 2014-06-20 03:00:00


마이크로코스모스
―장철문(1966∼ )

나는 그만 일출의 장관을 보아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침묵이 만들어내는
무한장력을
밀고 올라오는 햇덩이를.
웅덩이는 그만
침묵의
무한장력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아마도 그 순간에는
숲도 그만
숨쉬는 걸 잊었을 것이다.
그 웅덩이인지 연못인지 모를
어머니의 몸속에서
햇덩이 하나가,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그걸 바라보는 이쪽까지 환하게
머리를 내밀고
뒤이어 목이 빠져나오고
몸통까지
우뚝
솟아오른 뒤
날개와
네 다리를 펴고
나머지
접힌 두 앞다리를 차례로 펴고
물위에
균형을 잡고 섰다 싶은
순간,
왱!


가을이면 길가에 줄지어 꽃 피어 있는 코스모스, 그 이름이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에서 딴 것이라는 걸 알고 신기해했던 생각이 난다. 이름을 지은 이는 가녀린 몸에 소녀 같은 얼굴로 한들한들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에서 우주를 본 거다. 하긴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우주를 구현하고 있을 테다. 화초 코스모스는 제 이름으로 세계가 수많은 마이크로코스모스, 아주 작은 우주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연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의 한 장면 같은 시다. 화자는 숲에 갔다가 보기 힘든 현장을 목격한다. 물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막 성충이 돼 물을 벗어나는 모기를 본 것이다. 화자는 왜 물구덩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까. 모기의 사생활을 엿보자던 건 아닐 테고,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일렁이는 고인 물이 마침 피로했던 화자의 걸음을 쉬게 했을 테다. 물속이나 어머니 배 속이나, 안전하고 익숙한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머리를 내민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 ‘무한장력’을 뚫고 ‘햇덩이’처럼 솟아난 모기여! 그 순간 웅덩이는 환했을 것이다. 모기의 작은 머리통이라고 여명이 없을까. 화자는 ‘그만 일출의 장관을 보아버렸다’ 한다. 시가 ‘왱!’으로 장난스럽게 끝나는데, 그렇게 장하게 태어났건만 삶은 하찮고 해로운 벌레라는 말을 하려는 듯도 하고, 그런 사람도 탄생은 장엄했다고 말하는 듯도 하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