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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해]韓非子와 박상은 운전기사

입력 | 2014-06-20 03:00:00


“군주의 근심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을 잘못 믿으면 그 사람에 의해 제어 당하게 된다. 군신(君臣)은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신하는 군주의 권세에 눌려 할 수 없이 섬기는 것에 불과하다. 신하는 군주의 마음을 엿보며 노리게 되니 잠시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춘추전국시대 한(韓)나라의 귀족 한비자(韓非子)는 군주와 신하, 지도자와 부하는 서로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투쟁하는 관계라고 썼다. 부하의 마음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여전히 충성스럽다고 여길 경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군주와 신하는 서로 철저하게 계산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한비자 이론을 통치원리로 삼았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순자(荀子)의 제자가 한비자다. 조선시대 삼강오륜에서는 군위신강(君爲臣綱·신하는 임금을 섬긴다)과 군신유의(君臣有義·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를 강조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부자(父子)나 부부(夫婦) 같은 운명적 관계로 보는 것이다. 백성의 충성심, 의리를 은근히 강조한다.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 운전기사가 현금다발 3000만 원이 든 가방을 들고 검찰에 찾아가 불법 정치자금이라고 신고했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대형 수뢰사건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운전기사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 금품 사건에 모두 운전기사가 나온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지만 뒷좌석의 주인이 통화하는 내용까지 모두 듣는 것이 운전기사다.

▷박 의원 차에서는 뒷좌석의 주인과 앞자리 운전기사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던 것 같다. 돈 가방을 들고 가 검찰에 신고한 운전기사를 배은망덕(背恩忘德)했다고 나무라기도, 정의를 구현했다고 박수 치기도 애매하다. 한비자처럼 경계하든지, 그것이 아니라면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갈 정도로 좋은 사이로 만들어야 하나. 배신을 탓하기 전에 차주인의 처신부터 바로 하고 볼 일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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