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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뜸한뜸… 장애인에 ‘사랑의 약손’ …천안약선한의원

입력 | 2014-06-23 03:00:00

[우리동네 착한 병원]




최호성 천안약선한의원 원장(왼쪽)은 개원 이래 수년간 평일 진료 중에 반나절을 장애인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 무료진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 원장이 12일 천안 나사렛대 무료진료소에 찾아온 한 시각장애인 환자의 맥을 짚고 있다. 천안=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12일 오후 1시 충남 천안시 천안약선한의원. 오후 진료를 준비할 최호성 원장(36)이 갑자기 한의원 문을 닫았다. 한의원 문 앞에 놓인 노란 팻말엔 ‘목요일은 장애인 봉사활동 관계로 1시까지 오전 진료합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최 원장이 한의원 직원 2명과 차로 10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재활복지 특성화대학인 나사렛대. 그는 대학 본관 한편에 마련된 무료 진료소에서 장애학생들을 진료했다. 벌써 3년째. 장애학생들은 수업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을 이용해 매달 한 번씩 최 원장에게 진료를 받는다. 2010년 개원 이후 매주 병원에 오기 힘든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가는 진료 서비스를 만든 최 원장. 평일 의원 진료시간을 과감하게 줄인 목요일 오후 최 원장은 장애학생 무료 진료를 비롯해 장애인들을 위한 정신건강강좌, 장애인 인권 강의 등 ‘조금 특별한 진료’를 이어간다.

○ 입구 문턱 평평, 장애인 위한 무료 강의

최 원장이 장애인 환자와 인연을 맺게 된 건 2009년. 한방의료활동모임 ‘들풀’을 만든 동국대 한의학과 선배가 “한 달에 한 번 장애인들을 돕는 진료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온 것. 당시엔 ‘동정과 시혜의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매달 격주 일요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무료 진료소에서 장애인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장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장애는 ‘치료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그들의 삶 자체였다. 사회의식이 투철한 수많은 진보장애인을 만나면서, 오히려 최 원장이 그들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장애인 환자들을 위한 진료를 결심한 최 원장은 한의원 입구 문턱을 평평하게 만들어 의원 밖 복도 바닥과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환자들이 내원할 때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의학 분야 중에서도 정신건강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최 원장은 2010년부터 한 달에 두세 번 장애인을 위한 정신건강 및 우울증 관련 강의도 시작했다. 이는 장애인은 물론이고 비장애인도 화병과 우울증, 공포 등 정신건강에 대한 무료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강의에선 장애로 마비된 부위에 순환을 도울 수 있는 마사지나 스트레칭 등 기본적인 관리법을 소개한다.

○ 목요일 오후, 직접 찾아가는 무료 서비스

스스로 병원을 찾는 장애인도 있지만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들은 직접 한의원에 찾아오기 어렵다. 최 원장이 직접 찾아가는 진료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다.

최 원장은 장애인 집회 현장은 물론이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약과 침, 핫팩 등 진료기구를 들쳐 메고 달려간다. 최근엔 밀양 송전탑 시위로 장기간 건강상태가 악화된 할머니들을 찾아가 상담 진료를 했다.

최 원장은 “마음의 고통을 나누는 게 진료의 첫 단계”라며 “함께 의료연대활동을 원하는 한의사들을 개인 페이스북 등을 통해 모집하지만 사실 연락이 많이 오진 않는다”며 웃었다.

약 한 첩 가격이 만만찮고, 평일 진료시간을 줄이면 경영상 타격도 상당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최 원장은 “약 같은 경우 무료 진료로 처방하는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니어서 그리 부담이 큰 건 아니다”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또 “평일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들은 분명히 있다”며 “직접 찾아가는 것이 힘들어도 숙제나 의무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장애인의 마음을 먼저 읽어야

장애인 환자를 돌보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최 원장은 “장애인 환자들을 어떻게 진료해야 할지 몰라 문의하는 한의사도 종종 있다”며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조금만 더 배려하면 된다”고 말했다.

가령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화 도우미가 없을 땐 입 모양을 크게, 또박또박 얘기하거나 필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뇌병변 장애로 의사소통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 환자를 진료할 땐 환자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눈을 바라보며 진료한다.

의사의 세심한 배려는 환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곤 한다. 12일 나사렛 무료 진료소를 찾았던 시각장애 1급 학생 설원형 씨(23)는 “치료도 좋지만 대화하는 게 좋아서 매번 찾는다”며 “진로상담이나 고민 등을 함께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한결 낫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표정과 말투 등을 통해 환자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우선”이라며 “장애를 먼저 보지 말고 사람을 먼저 보는 것이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정위원 한마디▼
“仁術 실천하는 ‘착한 원장’에 박수”



충남 천안 약선한의원을 두고 위원들은 “착한 병원보다는 ‘착한 원장’이 더 돋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년간 꾸준히 무료진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최호성 원장은 의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평이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인증사업실장인 김명애 위원은 “이 같은 봉사활동이 널리 알려진다면 의료계를 향한 불신 풍조도 조금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치과의사 전 홍보이사 김세진 위원도 “장애인 환자 진료는 일반진료보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사명감이 필요하다”며 “봉사를 통해 본인의 진료철학을 펼치고 있는 최 원장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장애인 환자를 위한 진료 체계가 잘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인 장동민 위원은 “단순히 개인적인 봉사활동 차원이 아니라 체계적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전국 각지의 장애인 환자들이 더욱 편리하게 진료 받을 수 있도록 국가적 연구와 지원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 ‘우리 동네 착한병원’의 추천을 기다립니다. 우리 주변에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있으면 그 병원의 이름과 추천 사유를 동아일보 복지의학팀 e메일(health@donga.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