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지난해 말 아동학대특례법이 서둘러 국회를 통과했고, 이 법에 의해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형량이 높아졌다. 그 후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아동학대 엄벌’을 약속했고, 현행법상 징역 30년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아동학대로 사망한 경우 최대 9년형’이라는 현실감 없는 양형기준을 제시했다.
부산에서 ‘여덟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고 밝힌 한 어머니가 ‘제발 500년 1000년 징역을 살게 해 주세요. 아동학대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려 주세요’라고 재판부에 진정서를 내는 등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의 진정서가 전국에서 쇄도했지만, 1심 법원은 칠곡 계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갈비뼈 17개를 부러뜨려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울산 계모에게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한 양형기준을 정하기 위해 2007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이후 상당한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의지가 얼마나 반영됐는지, 양형기준이 국민의 눈높이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감정대로 양형을 늘리고 줄이는 ‘원님 재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법원의 양형기준은 ‘형법’에선 점잖은 체하며 수십 년 고루한 양형을 유지하고 각종 특별법으로 가중처벌 사유를 붙여 국민 법 감정을 따라가는 ‘아슬아슬한 이중 잣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가적인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국회에서는 형량을 높이는 법안들이 쏟아지지만, 양형위원회에서는 ‘민심에 등 떠밀린 무리한 법률’이라며 이들 법안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수많은 아동학대사건들과 가정폭력사건들, 성폭력사건들이 그러했고, ‘대기업 회장님’들에 대한 양형이 그러했고, 황제노역 판결이 그러했다. 언론의 관심과 국민 분노가 휩쓸고 지나가면, 판사들은 편리한 양형기준과 기존 판례 뒤로 숨어 버리고 우리 사회의 관심사에서 잊혀진 피해자들의 눈물과 한숨만 쌓이곤 해 왔다.
나는 우리 사회의 정의가 위험수위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 그 사회에 과연 희망은 자랄 수 있을까?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