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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신세대 병사의 총기 참사, 안보 차원에서 대응하라

입력 | 2014-06-23 03:00:00


강원 고성의 육군 22사단 소속 임모 병장은 그제 일반전초(GOP) 주간 근무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복귀하다가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터뜨리고 K-2 소총을 마구 쐈다. 그는 도망치는 병사들을 쫓아가며 조준 사격을 하고 생활관까지 달려가 동료들을 공격했다. 임 병장은 정상적인 군인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을 같은 소대 전우들에게 저질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전역을 불과 3개월 앞둔 그가 갑자기 괴물로 변한 이유를 추정하기 어렵다. 전역을 앞둔 병사들은 몸을 사린다. 고참인 그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군은 숨기지 말고 총기 난사의 원인을 공개해야 한다.

범행 뒤 60여 발의 실탄을 갖고 도주한 임 병장은 어제 추격한 군과 대치하면서 총격전을 벌였다. 추격 부대의 소대장은 임 병장이 쏜 총탄에 관통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임 병장이 투항을 거부하고 총격전으로 맞선 것으로 미루어 총기 난사는 우발적 행동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임 병장은 2013년 4월 인성검사에서 관심병사 A급 판정을 받았다. A급은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거나 사고 유발이 우려되는 사병으로 특별관리 대상이다. 그러나 임 병장은 지난해 11월 2차 인성검사에서 중점관리 대상인 B급으로 판정이 낮아져 그 다음 달부터 GOP에 투입됐다. B급은 지휘관 재량에 따라 GOP 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지만 안이한 판단이 끔찍한 비극을 낳고 말았다.

군은 GOP 근무가 가능한 B급으로 판정을 낮춘 이유에 대해 “과묵하고 내성적인 임 병장의 성격을 밝게 하는 차원에서 부분대장 직책을 맡겼는데 이후 동료들과 대화하고 성격도 나아졌다”고 설명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GOP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경계근무 시간이면 수류탄과 수십 발의 실탄을 휴대한다. 중무장한 병사는 철저하고 세심하게 관리하는 게 당연하다. 군이 A급 판정을 받았던 병사를 GOP에 투입해 위험을 자초한 과정이 규명돼야 한다. 육군의 급격한 병력 감축으로 인해 관심병사를 GOP에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심각한 일이다. A급이든 B급이든 군 생활 부적응 사병이라면 실탄을 장전한 자동소총이나 수류탄을 다루지 않는 근무지로 보냈어야 옳다.

군부대 총기난사 사건이 잊어버릴 만하면 터지니 국민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2005년 6월에도 경기 연천군 최전방 초소 생활관에서 총기 난사로 8명의 병사가 사망했다. 2011년에는 인천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김모 상병이 4명의 동료를 살해했다.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했다. 그러나 또다시 어이없는 참사가 발생했으니 군의 약속은 빈말이 되어 버렸다. 임 병장 부대원들이 GOP 근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 총기반납 근무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군 부적응 사병에 살인무기 맡기다니

22사단에서는 2012년 북한군 병사가 생활관으로 접근해 문을 두드릴 때까지 까맣게 몰랐던 ‘노크 귀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지휘관들이 줄줄이 문책을 당했지만 후임자들은 과거의 기강 해이를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아 또다시 오명을 남기게 됐다. 왜 같은 부대에서 군기 사고가 잇따르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지휘관들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은 현재 사실상 공석이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 겸직하는 상태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군 상층부의 공백은 최전방의 불안 요인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한 군의 기강해이가 총기 참사를 막지 못한 게 아닌지 우려된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부대에서 적의 공격도 아니고 우리 병사의 총기 난사로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6월 호국보훈의 달에, 그것도 6·25전쟁 발발 64주년을 나흘 앞두고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사건이 군 전체에 미칠 악영향도 심각하다. 최전방을 지키는 군인들이 전방의 적보다 등 뒤의 동료를 더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것과 다름없다.

요즘 군 입대자는 개인 생활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다. 이들을 관리하고 정신 건강을 판정하는 작업에는 군사전문가뿐 아니라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전공자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그래야 판정의 정확성이 높아진다. 군은 이번 사건을 해당 병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