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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월드컵 열기와 브라질의 그늘

입력 | 2014-06-23 03:00:00

2014년 6월 22일 흐림. 두 플라비아.
#113 Flavia Coelho ‘Por Cima’(2014년)




브라질 출신 가수 플라비아 코엘류. 지누락엔터테인먼트 제공

며칠 전에 플라비아 코엘류라는 브라질 출신 가수의 음반이 사무실로 배달됐다.

플라비아와 브라질. 단 두 개의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결합돼 하나의 열쇠로 주조됐다. 그건 이내 기억 금고의 빗장을 푼 뒤 2012년 1월, 지구 반대편으로 날 날려 보냈다.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내리자마자 난 한국인 선교사 부부의 차에 납치되듯 올라탔다. 서쪽으로 10시간 정도 달려 이름도 낯선 소도시 이타페바에 닿았다. 몽환적인 이파네마 해변이나 이구아수 폭포의 장관 대신 난 그곳 빈민 주거 지역인 산타마리아 마을의 진창 같은 삶과 5일간 겹쳐 있었다.

‘포르 시마’의 뮤직비디오 속의 플라비아 코엘류. 레게와 브라질 음악을 섞은 듯한 끈적한 리듬에 맞춰 ‘날 기다리지 말아요’란 메모가 붙은 냉장고 앞에서 춤을 춘다. 떠난 연인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듯 관능적으로 노래하는 코엘류는 이타페바의 플라비아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안경을 낀 평범한 얼굴에 넉넉한 체형의 플라비아가 사는 산타마리아는 성매매를 해 번 돈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마약 사려고 돈을 훔치다 감옥에 드나든 형과 오빠들, 그들이 사는 무너지기 직전의 판잣집으로 가득했다. 5일 동안 플라비아가 웃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산타마리아의 ‘광산’은 마을 남서쪽 언덕의 쓰레기매립장이다. 마을 주민 다수는 그곳의 쓰레기를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주민들은 언덕을 이뤄버린 주변 큰 도시의 과거를 파먹고 산다. 플라비아는 “예전에는 이타페바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선교사가 운영하는) 센터를 통해 공부하면서 100배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서울의 월드컵 거리 응원 인파 앞에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문구가, 월드컵 뉴스 속에 브라질 시위대를 피로 진압하는 현지 경찰의 사진이 놓인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세상을 둘러싼 비참한 진실이 기억 금고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어온다.

삶을 둘러싼 비참은 오늘도 세상 언저리에 언덕을 만든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언덕이다.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2008년)의 유명한 추격 장면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세계적인 빈민가 호시냐를 배경으로 한다. 브루스 배너 박사는 심박수가 높아지면 녹색 괴물로 변한다.

매일매일 내 금고는 간신히 범람을 견뎌낸다. 두 개의 인격, 두 개의 옵션. 그 사이에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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