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정 도예가
《 ‘남자에게 자전거란 무엇일까.’
도예작가 이헌정 씨, 안헌수 CJ그룹 부장, 남정우 필립스 팀장, 김영식 한화그룹 매니저가 동아일보 MAN섹션에 ‘남자, 자전거’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이달 초 이 씨는 딸과 함께 미국 서부를, 안 부장은 아들과 함께 우리 국토를 달렸다. 남 팀장과 김 매니저는 자전거가 남자의 인생길에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고 했다.
자전거는 남자에게 감각적이고 개인적이며 가정적인 요상한 매력을 주나보다. MAN 》
지난해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Cal Arts)에 입학하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 준 게 올해 여행의 발단이었다.
그런 느낌을 가지고 캘리포니아 101 해안도로의 절경인 빅서(Big Sur)를 운전하고 있을 때 나의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라이딩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나는 아내와 딸에게 “우리 꼭 한번 자전거 라이딩 여행을 하자”고 선언을 했다.
나에게 자전거는 경기 양평에 살면서 누리는 가장 행복한 취미생활이자 건강을 지키는 수단이다. 예전에 자전거에 입문할 때엔 ‘스페셜라이즈드’ 산악 자전거를 타다가 2년 전 ‘캐논데일’ 산악자전거로 바꾸어 타고 있다. 자전거를 고를 때엔 무척 신중해서 열정적으로 검색한 후에 실제로 숍에 가서는 몸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결정한다.
평소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실에서 도예작업을 하다 보면 멍한 상태가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라이딩하면서 자연과 조우한다. 자연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느끼며 피부에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을 홀로 즐긴다. 이런 나만의 시간은 다시 작품에 전념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의 일정은 개인전, 아트페어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만 돌아갔다.
모아브 근처 아치스 국립공원에서의 자전거 라이딩은 내리막과 오르막의 길들이 우리의 인생살이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는 열음이가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인생의 그 어떤 상황들을 만났을 때보다 적극적으로 투쟁해 나가길 기대한다.
나는 고갯길을 올라갈 때 그 과정의 어려움과 고통보다는 앞으로의 내리막을 상상하면서 감내해 나간다. 빅서 해안도로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며 오르막길에서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내리막에서 비로소 바다와 산과 바람이 나와 하나가 된 황홀한 기분을 맛보았다.
이런 자전거의 라이딩 과정은 나의 작품 제작 과정과도 유사하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과 노동, 그 외 변수의 상황들은 때로는 나를 힘들게 몰아치지만 그럴 때면 나는 모든 일이 완성되었을 그때를 상상하며 이겨 나간다.
나에게 여행은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곳에 대한 기대가 있어 더욱 즐거운 것이다.
::이 씨는 도자기와 콘크리트를 혼합한 가구, 찌그러진 달항아리 등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꾀한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 등이 그의 도예작품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