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고구려 이야기]<14·끝>
윤명철 교수
현재는 1982년에 설치된 비각 안에 있으며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중국 당국은 최근 비각을 큰 유리로 둘렀다. 돌은 자연석으로 장방형 기둥 모양이다. 윗면과 아랫면이 넓고 중간부분이 약간 좁은 형태를 띠고 있고 무게는 37t 정도 된다. 글자는 1775자이며 이 중 150여 자를 읽을 수 없다.
조선의 학자들은 광개토대왕비에 대해 잘 몰랐다. 1447년에 쓰인 용비어천가에는 “평안도 강계부(江界府) 서쪽으로 강을 건너 140리쯤에 큰 벌판이 있다. 그 가운데에 옛 성이 있는데, 세상에서는 ‘대금황제성(大金皇帝城)’이라고 일컫는다. 성 북쪽으로 7리쯤에 비석이 있다”고만 적혀 있다. 1486년 성종 때 쓰인 동국여지승람에도 ‘세상에 전해오는 말로는 금나라 황제묘라 한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장수왕은 무슨 목적으로 이 비를 세웠으며, 그것을 통해 알리고 싶은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광개토대왕릉비 비문 중 변조 의혹이 있는 부분. 일본은 이 문구를 바탕으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며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정책 도구로 활용했다.윤석하 작가 제공
둘째, 광개토대왕이 22년 동안 벌인 정복활동과 영토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면서 그 정당성을 표방하고 있다. 모든 정복활동이 하늘의 자손으로서 하늘의 뜻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셋째, 고구려의 사상과 시대정신, 미의식을 상징물의 형식을 빌려서 표현하고 있다. 비는 세워진 터(장소)부터 의미심장하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중심이다. 그곳에서 해뜨는 방향인 동쪽 들판 한가운데 평평한 곳에 동명왕의 신전일 가능성이 큰 장군총이 있다. 비는 그 장군총과 일직선으로 1650m 떨어져 있고, 압록강가에 있다. 풍수사상에서 보면 중요한 혈자리에 해당한다.
모양도 통념을 깬다. 전체적으로는 직육면체의 꼴을 갖추었지만 네 면이 반듯하지 않고 틀어진 듯 엇갈렸다. 네 개의 모서리도 직선이 아니라 불규칙한 곡선에 가깝다. ‘각력응회암’이기 때문인지 글자를 새긴 표면도 거칠고 울퉁불퉁하다. 글자체는 웅혼하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소박하다. 화강암이나 오석처럼 순도 높은 단색의 석재가 아니라 한 덩어리의 자연석을 약간 다듬어 글씨를 새긴 후에 마치 심은 듯 세워 놓았다.
광개토대왕릉비의 최근 모습. 건물 안쪽에 보관돼있는 것이 광개토대왕릉비다. 중국 지린 성 지안 시 동북쪽에 있다. 윤명철 교수 제공
하지만 그들 간에는 신분과 종족의 차별감도 생기고, 문화의 갈등과 충돌도 발생했을 것이다. 북방종족들이나 한족들과 경쟁체제에 있는 고구려로서는 강력한 통일 공동체여만 승리할 수 있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신흥 제국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때 권력과 법치, 군사력, 고도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는 지배 방식을 택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상생하고 조화롭게 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사실 이는 원조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이 지녀온 사상이다. 이질적인 종족과 문화들을 고구려라는 용광로에서 녹여내고 공동체를 이룩하려면 적합한 시대정신과 사상을 찾고, 공동의 문화를 창조하며, 국가의 시스템도 개조해야 한다. 또한 이를 전파하고 교육하는 특별한 상징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비문은 훼손돼서 상태가 좋지 않고,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글자를 해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일본은 비문을 훼손해 ‘임나일본부설’ 등을 유포하면서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정책 도구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와 고구려가 벌인 정복활동을 고려하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 무렵에 왜국은 핵심지역조차 통일을 못한 소국들의 집합체였을 뿐이다. 게다가 일본은 그때까지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고구려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700년 동안 자존심을 지키면서 강국으로 존재한 나라다. 당시 중국은 5호 16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고구려는 이런 정세를 활용하여 큰 영토를 차지한 동아시아 최강대국이었다. 어쩌면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이라 할 수 있다.
그랬다. 고구려는 대륙과 바다를 지배했고 중국과 일본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학문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이었다. 고구려는 한민족의 살아있는 역사이고 원형(原形)이며 기상이다. 지금 고구려의 피가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다. 남북 교류와 통일을 통해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고 이를 다시 한민족 웅비의 에너지로 만드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의 지상과제라고 모두들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왜냐고? 고구려라는 살아있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광개토대왕비가 건립된 지 1600주년 되는 해다.
윤명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