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1905∼2004)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고,
잔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서 깨어날 때,
원을 그리다 비상하는 조용한 새의
날개 속에도 내가 있고
밤하늘에 빛나는 포근한 별들 중에도 내가 있어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죽은 게 아니랍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울다, 울다, 눈물이 말라붙은 이들도 다시, 그러나 조금은 따뜻하게 울게 되리라. 번역가 김미진의 블로그 ‘모눈종이의 지붕 밑 다락방’에서 ‘죽은 이가 산 이를 위로하는 위대한 안식의 시’라고 소개된 시를 옮겼다.
전쟁은 인간이 처하는 대표적인 극한상황이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모습과 가장 저열한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 한편 인간이 얼마나 이타적일 수 있는가. 삼가 6·25전쟁으로 희생된 분들의 안식을 빈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