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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연수]일본은 왜 진작 쌀 시장을 개방했나

입력 | 2014-06-25 03:00:00


신연수 논설위원

요즘 시장에 가면 가지각색 쌀 종류에 놀란다. 강원 철원 청정미, 임금님이 드시던 경기 이천쌀, 전북 장수 메뚜기쌀 등…. 밥을 많이 안 먹으니까 양이 적고 좀 비싸도 유기농 제품이 인기 있다. 포장지에 농부의 얼굴과 이름이 있고 도정한 날짜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쌀들을 보면서 우리 쌀에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쌀 시장 개방을 놓고 정부와 농민단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더이상 개방을 미룰 수 없다”고 하고, 농민단체는 “시장을 한번 내주면 돌이킬 수 없다”며 반대한다.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에 참여한 순간, 개방은 이미 예정됐다. 20년간 다른 대가를 치르며 미뤄 온 것이다. 올해 말이면 유예기간이 끝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쌀에 관세를 매겨 개방하느냐, 아니면 의무수입량을 늘리느냐 두 가지뿐이다. 농민단체들은 “미루거나 제3의 방법을 찾아보라”고 주장하지만 비(非)현실적인 희망사항에 가깝다.

세계무역기구(WTO) 159개 회원국 가운데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나라는 4개국이었다. 이 중 일본과 대만은 일찌감치 관세화로 돌아섰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세계적인 수출대국이지만 자국 시장은 안 여는 나라다. 한국은 47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지만 일본은 22개국과, 그것도 개방수준이 훨씬 낮은 경제협력협정(EPA)만 맺었다. 특히 농민과 지방자치단체의 힘이 강해 농축산물 시장은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런 일본이 1999년 일찌감치 쌀 시장을 개방했다. 의무수입량을 계속 늘리는 것보다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략은 성공했다. 일본은 개방 15년이 지났어도 수입쌀이 발을 못 붙인다. 자유시장에서 수입되는 쌀은 400t 정도로 점유율이 0.004%에 불과하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2003년 개방 후 지금도 시장을 통해 수입되는 건 500t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개방을 안 한 나라는 우리와 필리핀밖에 없다. 필리핀은 최근 개방을 또다시 미룬 대가로 수입량을 현재의 2.3배로 늘리고, 쇠고기 등 다른 농축산물 시장을 더 개방했다. 우리는 현재 40만9000t을 의무 수입하고 있다. 내년에 관세화를 해도 영구적으로 매년 이만큼씩 수입해야 한다. 쌀 수입과 관리에 매년 2000억 원의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 국제규정상 남아도는 수입쌀은 해외에 원조할 수도 없다.

만약 개방을 늦춰 의무수입량이 2.3배가 되면 그 후엔 매년 94만 t을 수입하면서 시장도 열어야 한다. 국내 시장의 20%나 되는 이 많은 쌀을 수입하면 쌀 농가는 초토화하고 말 것이다. 더 늦추지 말고 지금 관세화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정부가 믿음을 줘야 한다. 농민들은 “처음에 관세를 300∼500%로 높게 매기더라도 점점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미국 및 중국과의 FT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쌀 관세를 낮추라는 압력에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쌀은 FTA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을 지켜야 하고,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쌀 시장 개방은 우리 농가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 농산물과 식품은 거대시장인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쌀 시장을 개방하면 수입쌀이 국내 시장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우리 쌀이 해외로 수출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은 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쌀 관세를 높이는 데 토론의 초점을 맞출 때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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